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인터뷰] 비둘기우유 - 2015-10-15

비둘기우유: 가장 순수한 노이즈를 꿈꾸다 BY 김종규 - 2015-10-15 

*원문 링크: http://webzinem.co.kr/2661


비둘기우유 ⓒJongkyu Kim


2011년 5월 29일은 내가 처음으로 라이브 클럽 공연에 간 날이자 홍대 공연의 중심 역할을 해오던 라이브클럽 쌤이 문을 닫던 날이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밴드 ‘비둘기우유’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기타의 소음과 가느다란 여성보컬이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멜로디가 꿈결처럼 달콤했고 아름다웠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5년 8월 30일 상수동 무대륙의 10주년 잔치 공연에서 다시 비둘기우유의 공연을 마주하게 됐다. 이날도 여전히 비둘기우유는 폭발적인 사운드와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선보였다. 10이란 숫자의 영향 때문인지 밴드가 견딘 세월의 무게와 음악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와닿았다.

기타리스트 이종석이 주축이 되어 2003년 결성된 비둘기우유는 슈게이징(Shoegazing)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록 밴드다. 현재는 이종석과 드러머 이용준, 베이시스트 차상훈, 최근 합류한 기타리스트 한예솔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활동 초기부터 꾸준한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음악팬들로부터 크게 주목받는 밴드로 이름을 알렸다. 

2008년에 발표한 밴드의 데뷔 음반 [Aero]는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한국대중음악상 모던록 앨범 부문과 신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이어서 밴드는 2010년 미국의 슈게이징 밴드 ‘블리스 시티 이스트(bliss.city.east)’와 함께 작업한 스플릿 음반 [bliss.city.east 그리고 Vidulgi Ooyoo]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 영역을 한층 확장시켰다. 2013년 비둘기우유의 두 번째 정규 앨범 [Officially Pronounced Alive]는 오랜 활동 기간 동안의 음악적 성취를 명료하게 정립한 작품으로 연주의 비중을 늘리고 이전보다 훨씬 방대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선사한다. 이 외에도 비둘기우유는 내로라하는 국내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유명 해외 밴드 내한공연의 오프닝 및 여러 차례의 해외투어 등을 통해 국내 뮤지션으로서 큰 성과를 쌓았다.

이 인터뷰는 상수동 선샤인바에서 지난 8월 16일에 진행됐다. 비둘기우유의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하나의 그림으로 담는 데 주력했다.


2015년의 비둘기우유. 위에서부터 차상훈(베이스), 이용준(드럼), 이종석(기타/보컬), 한예솔(기타/보컬) ⓒYuki Kuroyanagi


Q: 작년 12월 20일로 비둘기우유가 10주년을 맞았다.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 근황을 이야기해달라. 
이용준(이하 용준): 밴드가 10주년을 맞으면서 동시에 기타를 맡았던 함지혜 누나의 고별공연이 있었다. 
이종석(이하 종석): 그때까지 지혜는 비둘기우유와 ‘적적해서 그런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바빴다. 어려운 결정이 있었지만 지혜는 적적해서 그런지 하나에 전념하기로 했다. 
용준: 연초에 새 기타리스트를 구한 뒤 4월부터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공연에 대한 감과 합을 맞추는데 주력했다. 이번 8월부터 신곡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Q: 새 기타리스트 한예솔 씨의 영입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한예솔(이하 예솔): 원래 아버지에게 기타 레슨을 받고 있었다.
용준: 아, 예솔이는 종석이 형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예솔: 딱 아버지 뻘 되신다.
종석: 띠동갑 두번이다. (웃음) 
예솔: 아버지에게 기타를 계속 배우다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드려던 찰나였다. 아버지가 “너 혹시 밴드 섭외 들어오면 할 생각있냐” 하시길래 어떤 음악하냐고 물었더니 노이즈와 슈게이징쪽 음악을 한다고 하시더라. 한번은 멤버 소개 시켜준다면서 오라고 하시길래 갔더니 혼자 나와계셨다. (다들 웃음) 나는 아버지가 비둘기우유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겨울부터 비둘기우유의 멤버가 되었다. 

Q: 한예솔 씨는 기타를 끝내주게 잘 친다고 들었다.
종석: 예솔이가 나보다 기타를 잘 치는 것 같다. (다들 웃음) 한 1년 반 정도 가르친 것 같다. 예솔이는 레슨을 하면 한번도 빠지는 적이 없었다. 어떤 것을 가르쳐도 매일 연습을 하고 결국 다 해냈다. 블루스든 록이든 장르에 구애 받지 않았고 실력도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내가 데리고 있는 레슨생 중에 제일 잘한다. (웃음) 어느날 레슨이 끝나고 예솔이가 이제 하산해야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날 처음으로 예솔이에게 술을 사주면서 계속 음악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즈음 지혜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은 예정에 있었고 새 기타리스트를 물색해야 했다. 그런데 예솔이가 비둘기우유라는 그림에 잘 어울릴 것 같더라. 무엇보다 기타를 잘 치면서 여자 보컬까지 가능해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예전에 한번은 지혜가 자기 후임을 구했냐고 묻다가 “나도 좀 생각했는데, 예솔이 어때?” 하더라. 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던 참이었고. (다들 웃음) 
새 멤버는 음악을 굉장히 잘 아는 사람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잘 표현하고 잠재된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 점에서는 예솔이가 갖추고 있는 부분이 많고 연주할 때의 기타의 질감도 좋았다. 일단 예솔이가 공연에 대한 감을 잡아야 해서 같이 연습해봤는데 굉장히 빨리 실력이 오르더라. 워낙 기초가 탄탄하니까. 예솔이가 비둘기우유에 합류하고 첫 공연을 가진 지 4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계속 합을 맞추고 공연을 해왔는데 이제는 새로운 합을 맞추는 시기다.




Q: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처음 악기를 잡게 된 시기를 이야기해보자. 또, 지금은 무슨 악기를 쓰는지도. 
예솔: 대학 때 동아리에 들어가서 취미로 기타를 처음으로 잡았다. 주로 레스폴(Gibson Les Paul)을 쳤는데 당시 친구들이 “남자는 레스폴이지” 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은 텔레캐스터(Fender Telecaster)를 쓰고 있다. 
용준: 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교회에서 악기를 처음 배우게 되었다. 원래는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밴드에서 드럼을 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 바람에 드럼으로 가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드럼을 쭉 치고 있다. 스틱은 프로마크(Promark)다. 연습생부터 프로까지 다 쓴다. 
차상훈(이하 상훈): 고등학교 스쿨 밴드로 베이스를 쳤다. 지금은 펜더 재즈베이스(Fender Jazz Bass)를 쓴다.
종석: 중학교 때 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다. 심야 라디오 방송을 많이 듣기도 했고. 한번은 형 친구 네에 놀러 갔는데 형 친구가 일렉트릭 기타를 전축에 꽂고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을 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눈 앞에서 그 곡을 치는 사람을 처음 봤는데… 그때 나는 한국에서 이 곡을 치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웃음) 바로 낙원 상가 가서 당시 가격으로 2만원 짜리 통기타를 샀다. 그러고 지금까지 기타를 치고 있다. 비둘기우유에서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텔레캐스터를 쓰고 있다.

Q: 뻔한 질문인데 ‘비둘기우유(Vidulgi Ooyoo)’라는 밴드 이름은 어떤 의미로 지었나?
종석: 두 개의 의미가 있다. 언젠가 비둘기가 자기 새끼한테 젖샘에서 생성한 물질인 비둘기우유를 먹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그중에 하나다. 그 물질은 영문으로 피죤스 밀크(Pigeon’s Milk)라고 부르는데 어쩐지 환각적인 물질이 연상되었다. 우리 밴드의 영문명인 Vidulgi Ooyoo는 그런 환각적인 느낌을 살리고자 O가 두번 들어간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옛날 서양에서 만우절이 되면 아이들에게 비둘기우유를 찾아오라는 놀이가 있었다는 것에서 가져왔다. 그 아이들은 비둘기우유를 열심히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마치 파랑새처럼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비둘기우유라는 이름은 그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보면 된다.

Q: 비둘기우유를 결성하게 된 스토리는 어떻게 되는가?
종석: 비둘기우유를 하기 전에는 밴드 라비앙로즈를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라비앙로즈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고 기타 세션과 1집 앨범을 프로듀서 작업을 했다. 라비앙로즈는 슈게이징 음악을 하는 밴드로 출발했지만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색깔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나는 온전히 슈게이징 밴드를 만들고 싶었는데 라비앙로즈 탈퇴 후 곡을 쓰면서 구상을 했던 형태가 바로 비둘기우유다. 처음에는 2003년 가을 쯤에 라비앙로즈에서 드럼 치는 친구와 함께 비둘기우유의 모태를 만들었다. 이후 2004년 9월에 기타리스트 함지혜가 들어오고 한달 뒤 드러머인 용준이가 들어오면서부터 비둘기우유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다. 상훈이는 나와 20년 친구인데 2012년에 들어왔고 비둘기우유에서 가장 오래 활동 중인 베이시스트다.

Q: 2008년에 발매된 1집 [Aero] 때 이야기를 해달라. 밴드 데이드림의 멤버 신계현 씨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종석: 비둘기우유에서는 내가 곡 작업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곡을 쓰는 사람은 자기 음악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기 어렵다. 녹음에 대한 색깔과 방향, 믹싱, 컴퓨터 작업 등… 그런 것들을 계현이가 잘 보더라. 왜냐하면 계현이는 데이드림의 정규 앨범에만 5년 넘게 공 들이고 있어서 노하우를 많이 알고 있었다. 옆에서 우리를 많이 보아왔고 완벽주의자적인 면이 맘에 들어서 같이 작업하자고 했다. 덕분에 연주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예상보다도 [Aero] 앨범이 잘 나와서 좋았다. (웃음) 1집 때는 여자 보컬과 슈게이징 특유의 거친 노이즈가 섞인 기타, 이런 대칭 구조를 좋아한 것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상반되는 두 요소가 부딪혀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웠고 계속 관심이 갔다.

Q: 2010년에 미국 시카고의 슈게이징 밴드인 블리스 시티 이스트와의 스플릿 앨범 [bliss.city.east 그리고 Vidulgi Ooyoo]를 냈다. 앨범 제작 과정이 듣고 싶다. 또, 함께 공연한 적이 있는지도.
종석: 당시 마이스페이스를 한창 하던 시절이었다. 마이스페이스는 밴드가 자기 계정에 음원을 올려놓으면 사용자가 들락날락 거리면서 음악이 좋다 나쁘다 같은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블리스 시티 이스트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우리 음원을 듣고 같이 스플릿(split) 앨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승낙 후 서로 온라인에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재미있게 작업했다. [bliss.city.east 그리고 Vidulgi Ooyoo]는 분명 스플릿 앨범이지만 다음 앨범을 예측할만한 포석을 깔아 놓은 EP 앨범이라고 보면 되겠다. 블리스 시티 이스트와는 같이 공연을 할 뻔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공연 스케줄을 잡고 클럽 섭외까지 끝났는데 하필이면 한국에서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바람에 다 접어야 했다. 블리스 시티 이스트는 서울에 오지도 못하고 지인이 사는 충청도의 한 아파트에서 누워만 있다가 미국으로 귀국했다.

Q: 2013년 발매한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는 스플릿 앨범 이후의 결과물이라고 들었다. 확실히 이전보다 보컬의 비중이 줄고 훨씬 연주에 집중해서인지 사운드의 밀도가 단단해졌다. 어떻게 앨범 작업을 했는가? 특이하게도 이 앨범은 클라우드펀딩을 받아서 자체 제작을 했다.
종석: 아무래도 앨범 기획과 제작 진행 과정에서 뮤지션과 제작사의 입장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회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클라우드펀딩을 선택한 것이다. 앨범 얘기를 하자면, 그전까지 우리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라이드(Ride), 슬로우다이브(Slowdive) 같은 보컬이 들어간 90년대의 전형적인 슈게이징 음악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근데 2000년대에 부각된 포스트록(Post-Rock) 밴드인 모과이(Mogwai)를 보면 기존 작법을 비롯해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나. 우리도 이제는 그런 독자적인 스타일을 정의해야 할 것 같았다. 예전부터 기악곡이 중심이 된 앨범을 내고 싶었다. 1집의 유일한 기악곡인 ‘Murmur’s Room’도 그 흔적이고… 기악곡은 보컬이 없는 만큼 곡 전체를 연주로 채워서 감정 전달을 해야한다. 물론 연주는 길어지지만 그만큼 음을 쌓으면서 형성되는 커다란 하나의 음악의 흐름… 그 자체가 주는 충격과 감동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2010년의 스플릿 앨범 때는 그것을 고심하던 시기였고. 비둘기우유의 2집은 연주곡 위주로 채워져 있지만 우리만의 느낌이 잘 살려 있어서 굳이 보컬을 새로 넣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계속 연주에만 비중을 싣겠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해갈 것이다. 우리 안 마음의 흐름처럼 말이다.


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Q: 슈게이징과 포스트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런 장르의 매력은 무엇인가?
종석: 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음악을 듣고 슈게이징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에는 슬로우다이브, 라이드, 모과이,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 등을 접했고. 내 생각으로는 슈게이징과 포스트록 음악은 청자에게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똑같은 음악을 연주해도 연주자의 감정 굴곡이나 소리 질감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음악 이미지와 형태, 색깔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것이 느껴진다. 산발적인 노이즈와 들릴듯 말듯한 보컬의 대비가 그런 음악적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환각에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물론 친절한 음악은 아니라서 이해하는데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그것만 견디면 금방 매력을 알게 될 것이다. 
예솔: 자면서도 들을 수도 있다는게 제일 장점인 것 같다. (웃음)
종석: 그렇다. 예전부터 페스티벌 같은 데서 사람들이 돗자리 깔아놓고 누워서 우리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Q: 그러면 이제 비둘기우유의 곡 이야기를 해보자. 비둘기우유는 곡을 어떻게 쓰는가?
용준: 대개는 종석이 형이 모티브나 도입부를 짜온다. 처음부터 곡이 머릿속에 있을 때도 있다. 곡은 멤버들에게 최대한 의사가 전달된 뒤 합주와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때는 곡이 처음의 생각하고 달라질 때도 있지만 서로 맞춰가며 완성시킨다. 특이하게 ‘Infinity’라는 곡은 지혜 누나가 처음부터 아예 락킹하고 신나는 곡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곡이다.

Q: 멤버들이 생각하기에 비둘기우유의 곡 중 연주하기 가장 어려운 곡과 좋아하는 곡은?
예솔: 어려운 곡은 ‘Alleys’, 좋아하는 곡은 보컬이 없는 곡이다.
용준: ‘Infinity’는 너무 빨라서 힘들다. 한번만 했으면 좋겠는데 합주 때는 한번으로 안 끝나니까. (웃음) 애착이 가는 곡은 ‘Elephant’와 ‘Even Freedom’이다. 비둘기우유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연주한 곡인데, 슈게이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배우면서 연주할 때라 그런지 더 기억에 남는다.
상훈: 연주하면서 어려운 곡은 없고 좋아하는 곡은 ‘Blow Me Off High’다. 
종석: 플레이하기 싫은 곡은 특별히 없다. 연주 때마다 꼭 했으면 좋겠다 하는 곡은 ‘Murmur’s Room’이다.




Q: 비둘기우유는 거의 대부분의 공연을 ‘Good Night Shining’으로 끝낸다.
종석: ‘Good Night Shining’을 마지막에 안 하면 다음 곡을 할 수가 없다. 기가 빨릴 정도로 힘이 든다. (웃음) 이 곡은 우리가 굉장히 좋아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익숙한 슈게이징적인 흐름인데 시작은 정적으로 흐르지만 곡이 진행될 수록 하나의 큰 테마를 그린다. 사실 2집의 곡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웃음) 스플릿 앨범과 2집에는 각각 다른 버전으로 실렸는데 스플릿 앨범에는 우리 곡이 적기 때문에 한 곡 안에 최대한 많은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Q: 2집에 ‘Cypress’는 반 고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던데 어떤 의미인가?
종석: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중 왼쪽에 위치한 사이프러스 나무는 마치 불타오르는 검은 화염처럼 묘사 되어 있는데 굉장히 역동적이면서 인상적이다. 그 그림을 보고 기쁘다 슬프다 같은 1차원적인 감정 이상으로 훨씬 더 복합적인 감정을 느껴 경탄했던 적이 있다. 아, 참고로 1집의 ‘Murmur’s Room’도 반 고흐에게서 받은 단상 중 하나다. 반 고흐를 워낙 좋아해서 그의 작품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Q: 그 외에 곡을 만들었을 때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는가? 
종석: ‘Elephant’라는 곡을 쓸 때 있었던 일 하나가 있는데… 오래 전 만원버스를 타고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만석이었는데 뒷 좌석 중 딱 한 자리가 비어 있더라. 정거장을 계속 지나가는데도 아무도 앉지 않길래 가서 앉으려고 했더니, 빈 좌석 바로 옆에 안면장애를 가진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비집고 들어가서라도 앉으려고 했지만 알고나서는 앉지 않았다. 보통 때의 나였다면 그 여자를 피했던 사람들을 비난했을 것이다. 근데 정작 내가 상황에 처하자 그 옆에 가서 앉지를 못했다.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인지, 혹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를 의식하는 것인지… 도통 자신이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더라.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의 엘리펀트맨(The Elephant Man)이란 영화가 있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안면장애를 가져서 비인간적인 대우와 학대를 받는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쩌다 주인공은 어떤 명망 높은 의사로부터 도움과 보살핌을 받는데 나중에는 사교모임에 나가고 지식인들과도 친구가 되면서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얻게 된다. 근데 사실 그 의사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인공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저 선민의식 때문에 자신보다 약자인 주인공을 보호 받아야할 대상으로 여긴 것 뿐이다. 아무튼 그때 만원 버스 상황에서 그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나는 얼마나 깨끗한가? 도덕적인가? 양심적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Elephant’는 그렇게 쓰여진 곡이다. 근데 노래 하나 가지고 자기고백을 하다니 쑥쓰럽다. (다들 웃음)

Q: 일본에서 출시된 슈게이징의 선구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25주년을 기념하는 트리뷰트 음반 [Loveless Tribute]에 참여해서 ‘Only Shallow’를 수록했었다. 또, 비둘기우유 2집 일본반의 히든트랙으로 ‘Come In Alone’을 담았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하고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종석: 리스펙트하고 있다. 근데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활동 재개 후 내한을 두번이나 왔는데 두번 다 못 갔다. (웃음) 나는 음악과 관련된 작업이라면 대체로 좋아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거의 참여하는 편이다. [Loveless Tribute]의 ‘Only Shallow’는 우리 의도대로 커버가 되지 않은 감이 있다. 애초에 우리는 원곡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해서 한층 더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근데 1번 트랙부터 그렇게 사이키델릭하면 안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본래의 의도를 많이 죽였다. 사실 [Loveless Tribute]에는 ‘Come In Alone’로 참여하려고 했지만 당시 어른의 사정으로 그러진 못했다. 그래도 나중에 2집 일본판에 넣은 ‘Come In Alone’은 우리만의 느낌을 잘 살려 실어서 만족한다.
상훈: ‘Come In Alone’은 원테이크로 한번에 녹음해서 담았다. 사운드가 잘 나왔다.
종석: 우리 곡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다들 웃음) 

Q: 밴드를 하면서 직업과 병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도 그러고 있는가?
예솔: 용준 오빠는 직장에 다니시고 아버지는 합주실을 하신다. 나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해서 곧 취준생이 된다.
종석: 나는 레슨도 하고 있다. 1대 1로 저렴하게 하니까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 (다들 웃음) 상훈이는 지금은 밴드만 하고 있다.

Q: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어떻게 되는가?
예솔: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와 헨릭 프라이실래더(Henrik Freischlader),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 같은 블루스 색깔의 뮤지션을 좋아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좋아하는 앨범이 따로 있는데 [The Division Bell]하고 [Pulse], 2집 [A Saucerful of Secrets]을 좋아한다. 
용준: 되게 많지만 레드제플린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음에도 좋다. 드러머다 보니까 레드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John Bonham)을 좋아한다.
상훈: 우리나라 가요의 포크 음악 중에 조동진, 임지훈 등을 듣는다. 베이시스트로서는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를 제일 좋아한다.
종석: 좋아하든 싫어하든 여태까지 들었던 모든 음악들이 내게 영향을 준 것 같다. 그것이 밴드를 하면서도 색깔로 나오는데 그건 슈게이징이 워낙 정형화된 음악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밴드 멤버들이나 주변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은 나도 좋아하는 편이다.

Q: 휴식할 때는 무엇을 하는가? 
종석: 음악을 안 할 때는 잠자거나 술 마신다. 휴식을 취한다는 기분이 든 적이 별로 없다.
상훈: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소리를 줄인 뒤 베이스나 기타를 피킹하면서 뉴스를 본다. 
용준: 신발 덕질을 한다. (웃음) 집에 신발장을 두고 농구화 같은 흔치 않은 신발을 종류별로 모은다. 신상품을 사려고 매장 앞에 줄서서 기다린 적도 많다. 여자친구도 이쪽 분야를 좋아한다. 근데 먼저 인터뷰한 데이드림은 쉴 때 뭐한다고 했나? 
종석: 데이드림이 쉴 때 뭐하는지 내가 말해줄까? 나랑 술 먹는다. (다들 웃음) 
예솔: 아버지가 출판사에 계셔서 집에 책이 엄청 많다. 심심하면 책장에서 안 읽은 책을 꺼내 읽는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관에도 간다. 영어 공부하고 자소서를 쓰고 미국드라마도 본다.
종석: 역시 예솔이는 너무 스마트하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뭐가 되냐? (다들 웃음)

Q: 최근 들었던 음악이나 봤던 공연 중 좋았던 작품이 있다면?
종석: 영화 디어헌터(The Deer Hunter)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Cavatina’를 계속 재반복해가며 듣고 있다. 클래식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라벨(Maurice Ravel)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술 한잔하면서 들으면 미치도록 좋다. 정밀아도 좋더라. 나는 누나가 없지만 누나가 위로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웃음) 
상훈: 트로트와 댄스는 예전부터 많이 듣고 지금도 즐겨 듣고 있다. 남진, 나훈아부터 요즘 트로트까지 유튜브를 통해서 듣고 있다.
용준: 페이스북을 보다가 90년대 가요 목록을 찾아 듣는데 양수경이 진짜 좋더라. 그 당시의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엄청 좋다. 리메이크도 들어봤지만 원곡이 훨씬 낫다. 세이수미를 좋아하는데 같이 공연을 해보고 싶다. 나는 빅베이비드라이버 트리오에서도 드러머로 활동하는데, 세이수미와 합동 공연을 하면서 비둘기우유랑 같이 공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솔: 어제 클럽 에프에프에서 밴드 아즈버스의 공연을 봤는데 좋았다. 얼마 전에는 아시안체어샷의 EP앨범 [소나기]를 들어봤는데 좋았고, 최근에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를 다시 들으니 좋았다.


7월 18일 클럽 빵에서 ⓒYoungnam Kim


Q: 비둘기우유는 유명 해외 밴드 내한 때 오프닝 공연을 한 경험이 있다. 그때 이야기를 들려달라.
종석: 아무래도 모과이 내한 때가 기억에 남는다. 모과이 내한 일정이 잡히고 얼마 뒤에 프로모터인 슈퍼 칼라 슈퍼(Super Color Super)가 이벤트를 열었다. “당신도 모과이 내한공연의 오프닝 밴드가 될 수 있다” 면서 구인공고한 것이다. 원래는 모과이가 직접 팀을 고르겠다는 조건만 제시했는데 프로모터가 이벤트로 확대하면서 판이 더 커졌다. 모과이가 밴드를 간택하는 서바이벌 같다며 사람들이 욕을 엄청나게 했고. (웃음)
대개 큰 규모의 팀이 내한하면 보통은 그 팀만 공연을 한다. 하지만 굳이 오프닝 밴드를 섭외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메인 팀이 직접 고르는 것이 공연기획계의 관례다. 많은 팀들이 지원해서 경쟁도 치열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원해놓고도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어차피 인터넷 투표로 진행해서 팬덤 규모가 큰 밴드가 유리했으니까. 비둘기우유는 최종적으로 모과이가 고르는 5팀 중에 들어갔지만 최저 득표였다. (웃음) 근데 얼마 후 최종적으로 모과이가 우리를 뽑았다는 연락이 왔다. 정신이 핑 하고 나가는 줄 알았다. (웃음) 
용준: 공연 포스터에 모과이와 우리 이름이 같이 들어가서 좋았다. 워낙 유명한 밴드와 공연하다보니 직전까지 떨렸다. 한국 슈게이징은 구리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지기 싫은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공연장이 엄청 크고 넒어서 멤버들과도 눈짓을 주고 받기 힘들었던 일이 생각난다.
종석: 메인 밴드인 모과이와 우리의 사운드는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과이는 메인 무대인 만큼 스탭과 엔지니어, 장비들만 포함해도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니까. 오프닝 밴드는 메인 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핸디캡을 안고 공연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나중에 우리끼리 모과이처럼 되자고 다짐도 했다. (웃음) 그래도 그날 모과이는 우리 공연을 좋아했고 스튜어트는 무대 뒤에서 우리 공연을 끝까지 다 봤다. 기분 좋더라. (웃음)
무대에서 내려와 모과이의 공연을 직접 봤는데 악스홀이라는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엄청난 사운드를 내뿜는 것이 대단했다. ‘I’m Jim Morrison I’m Dead’를 할 때는 정말 엄청났는데 청력 손상 방지 이어링을 꼈음에도 귀에서 소리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 (웃음) 그때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운드를 연출하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되었다. 

Q: 일찍이 해외 투어 경험이 있다. 일본과 중국, 미국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아는데 이야기를 들려달라. 
종석: 2010년에 갔던 중국 7개 도시 투어가 비둘기우유의 첫 투어다. 국내 투어도 안 해봤으면서 중국을 먼저 간 거다. (다들 웃음) 도시마다 관객 규모가 일관적이지는 않았지만 중국 관객의 반응이 남달랐던 점은 기억에 남는다. 스테이지의 앞부터 자리 잡고서 우리가 뭔가 할 때마다 사진을 찍더라. 그런 열정이 보기 좋았다. 2013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이스트 아시아 슈게이즈 페스티벌(East Asia Shoegaze Fastival)에 참가해 공연을 했는데 3년 전에 봤던 관객이 다시 왔더라. 기분 좋았다. 중국 관객들은 머천다이즈도 다 사고 인심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용준: 서울소닉 북미투어로 2011년에 미국을 갔다. 그때 기억나는 것은 미국의 클럽 공연장의 규모는 대체로 작고 허름하지만 엔지니어가 밴드의 편의를 너무 잘 봐준다는 점이었다. 드럼 상태가 별로라서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엔지니어가 조작하자 금방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더라. 진짜 깜짝 놀랐다. 그동안 공연을 많이 다녔지만 한국의 공연장 엔지니어들과 소통이 너무 안되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한국 엔지니어들은 대개 자기 관점에서 사운드를 잡는다. 예를 들어 기타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면, 그럼 너네 노래가 안 들린다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소통이 잘 안된다. 애초에 우리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나 모르겠고. 근데 미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어서 좋았다. 우리가 요구하면 요구하는대로 들어주고, 고민해보고, 시도한다. 심지어 말도 안통하는데 말이다. 미국이 확실히 음악 쪽으로는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훈: 나는 그때 없었는데 멤버들이 2012년 도쿄 투어의 반응은 괜찮았다고 하더라. 일본 관객은 중국과 한국의 중간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는데 처음부터 앞에 오기 보다 조금씩 관찰하면서 천천히 다가온다더라. 듣는듯 안듣는듯 하면서도 속을 잘 모르겠다고. 근데 그 사람이 다음에 또 왔다는데 (웃음) 아무래도 국민성 같다. 아무튼 중국은 대놓고 열성적이고 일본은 세심하게 멀리서 관찰한다. 한국은 그런 양쪽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Q: 국내 투어 때 이야기도 들려줬으면 한다.
종석: 국내 투어는 2014년에 광주, 부산, 대구에서 했다. 이때 서울 외 지역 공연장 시스템과 관객층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대구는 서울 홍대 못지 않게 관객 반응이 좋았다. 광주와 부산은 관객 숫자는 적었지만 비둘기우유만 믿고 찾아온 관객이라 그런지 감정표현과 표정이 좋았다. 또, 올해 예솔이가 합류하고 나서 6월에 울산에서 공연을 했다. 울산은 작년에 울산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이번이 두번째였다. 스틱키핑거스(Sticky Fingers)라는 클럽에서 했는데 관객들이 대부분 외국인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Q: 비둘기우유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용준: 2008년에 바다비에서 있던 1집 쇼케이스다. 앨범을 걸고 하는 공연이면서 우리를 좋아하는 관객들만 모였다는 점이 색달랐다. 앞으로 더 좋은 공연을 한다고 해도 그때가 계속 기억에 날 것 같다.
상훈: 상하이 공연 갔을 때가 좋았다. 사실 공연보다도 자유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웃음) 관광 가이드처럼 여행 코스를 짰고 멤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주요 관광지를 거의 다 봤다. (웃음) 그 중에서 밤에 갔던 와이탄 광장이 너무 좋았다.
예솔: 올해 4월에 합정 채널 1969에서 한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비둘기우유로서 첫 공연이라서. 그때 함께한 모두가 알게 되어버린 게스트인 (웃음) 헬리비전과 같이 공연을 해서 분위기도 좋았다. 긴장 안 하려고 술도 많이 먹었고. (웃음) 관객 대부분이 다 우리를 보러 오신 분들이라 반응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석: 그동안 공연을 너무 많이 해서 잘 기억은 안 난다. 평소 가볍게 와인 한잔 정도 마시고 공연하는 편인데 소주 먹고 하면 매번 망친다. (웃음) 그외 대부분의 공연은 재미있다. 

Q: 이전에 한 블로거와 했던 인터뷰 중 무대에서 음악하는 과정을 “섹스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어떤 의미인가?
종석: 그 말을 한 이유는 그만큼 음악하는 것이 좋고 여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있다거나 관객과 마주할 때 긴장감, 서로 교감할 때의 기쁨 등. (웃음)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예전에 일본 공연하고 나서 한 평론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나는 “섹스와도 같다”고 대답했다. 그 평론가는 예전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케빈 실즈(Kevin Shields)하고도 인터뷰한 적 있다더라. 그러면서 케빈 실즈도 본인의 음악을 ‘섹스 뮤직’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웃음) 나는 케빈 실즈가 그런 대답을 한 줄 몰랐다. 어쩌면 같은 계통의 음악을 하니까 무언가 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음악이 무슨 성적인 음악은 아니고. (웃음)




Q: 비둘기우유로서 언젠가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상훈: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가 아니겠는가.
용준: 예전에는 국내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게 꿈이었는데 막상 서보니 별 거 없었다. 그때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 글래스톤베리에 안 가도 되니까 좋은 시간대에 공연했으면 좋겠다. 대낮 12시에 야외에서 공연하고 싶어하는 밴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밴드 음악과 어울리는 저녁 시간대에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했으면 좋겠다.
예솔: 음악 페스티벌의 서브스테이지에 메인 헤드라이너로 서고 싶다.
종석: ATP 페스티벌(All Tomorrow’s Parties Festival)이다. 주로 영국이나 유럽의 도시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인데 모과이나 더스턴 무어(Thurston Moore) 같은 인디 아티스트가 큐레이터가 되어 다양성과 음악성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한다고 들었다. 세계적인 인디록 페스티벌인데 영화계로 치면 ‘선댄스 영화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세계에 있는 다양한 인디밴드들이 서는 무대니 만큼 우리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조만간 참가해보고 싶다.

Q: 밴드가 10년 동안 존속했는데 앞으로의 10년 후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종석: 아무래도 10년이란 세월은 힘들다. 그 기간 동안 밴드가 난항을 한 번도 안 겪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음악하면서 여러 밴드들을 봐왔는데 밴드를 만드는 것보다 버티는 게 힘들더라. 아무래도 밴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밴드의 음악인 것 같다. 음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밴드는 버틸 수 있다.
예솔: 밴드 다이얼라잇의 수정 언니가 10년 후에도 음악하고 싶으면 상훈 오빠하고 종석 오빠의 건강을 잘 챙기라더라. (다들 웃음) 음… 종종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까 사회적인 책무나 바람을 예술가에게만 떠넘기는 광경을 보곤 한다. 10년 뒤에는 제발 그런 모습을 안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보다 직업 간에 불균형이 해결되고 사회적으로 처우개선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상훈: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물질적이기보다 사회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음악에 대한 인식과 저변도 확대되고 대중들의 시야가 넓어졌으면 한다. 
용준: 10년 전에는 이때까지 비둘기우유를 안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다들 웃음) 그냥 지금처럼 계속 밴드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종석: 나는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 바람을 말하자면 버텨 갔으면 좋겠다. 아마 한국을 포함해 모든 밴드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열심히 하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다들 버텼으면 좋겠다.


2015년의 비둘기우유 by Official Vidulgi Ooyoo Facebook


Q: 밴드로서는 지금이 터닝포인트인 것 같다. 앞으로 무슨 음악을 하고 싶나?
종석: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날씨가 맑거나 흐리지만 본래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본연의 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 갈망하고, 변화해가면서 음악을 했으면 한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고 싶다. 그러다보면 나 자신을 알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강단이 있는 음악이 하고 싶다.
상훈: 현재나 과거보다는 내 안의 생각과 마음이 구현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용준: 어떤 음악이 하고 싶다기보다는 많이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맨날 부족했음을 느끼니까. 
예솔: 변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굳게 유지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하고 싶다.

Q: 그러면 새 앨범은 언제 나올 예정인가? 어떤 것을 담을 것인가? 
종석: 고민 끝에 디지털 싱글 작업을 계획 중인데 한 달에 한 곡씩 내려고 한다. 10월 말에 한번, 11월에 한번, 1월에 한번 내기로 했다. 12월은 쉬고. (웃음) 그렇게 곡을 내다보면 어느정도 모일텐데 이게 EP 앨범이 될지 풀랭스(full-length) 앨범이 될지는 아직 명확하진 않다. 어떤 음악이 될지도 아직 모르겠다. 아까 신곡 작업을 하다 예솔이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해서 일찌감치 접은 게 있는데 나는 꽤 좋았다. 예솔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끄집어내고 싶다. 그게 급선무다. 일단 잘 하니까 믿고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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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5일 월요일

[Interview] SARITAH (ENG) - 2015-10-05

SARITAH: 레게는 자연과 공존하는 치유의 음악 BY 김종규 - 2015-10-05

*Original link: http://webzinem.co.kr/2607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It was the Jarasum International Jazz Festival in 2013 when I saw Saritah’s performance for the first time. When she began to sing, countless audiences who was sitting on the grass was beginning to get up and dance singing along. I guess lots of people had never heard of that song but they moved their body to the rhythm as if they knew the tune for a long time. I was enjoying her powerful performance as well. Saritah’s music brought much joy to our life like magic.

Saritah, the Korean-Australian singer-song writer, plays reggae and soul music in harmony. Since her first album <Gratitude> in 2004, she has been released a total of four albums so far performing steadily from all over the world including Europe,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Her fourth album <Dig Deep> was released on license in South Korea in 2013. She tells us her message on life with pleasant tunes communicating with the audience every time she is on stage. 

This year Saritah visited South Korea and had a surprise concert at the venue, Jamaica Wang located in Hongdae on May 10. This interview was done via e-mail over the course of several days. She gave an answer both in English and Korean(***Korean translation was provided her agreed). I tried to publish the full text to deliver her intention as it is. I really appreciate Saritah for her sincere response despite her busy schedule. 





Q: Saritah, please introduce yourself briefly. 
SARITAH: Hi everyone! My name is Saritah, I’m a singer, songwriter and musician of music best described as reggae/soul music. I was born in Korea (my mother is Korean), grew up in Australia, have lived in England, France, and Spain and am currently based in Los Angeles, California. I love Korea and I’m very happy to connect with all the music lovers out there.

Q: I’m wondering how you became interested in reggae music? 
SARITAH: From memory, my Dad bought me my first reggae album – an unofficial Bob Marley album, back when I was 13 or 14. My interest and love of reggae music has steadily and naturally grown over the years. Music is more about feel than genre of course – I love all kinds of music, as long as it speaks to me, moves me.

Q: What are you inspired by when creating music? 
SARITAH: How my heart is feeling, nature, people around me, self and planetary evolution, how life on planet earth is being affected by human beings living out of balance with it. 

Q: Who is your favorite/most influenced artist?  
SARITAH: There are so many! Definitely Bob Marley, Midnite, Meshell Ndegeocello, Erykah Badu, Manu Chao, Trinity Roots have been huge influences. Live artists that have had a massive impact on me include Jimmy Cliff, Rokia Traore, Steel Pulse and Damian Marley. 





Q: I most like your songs, especially ‘Gratitude’, ‘Tears of Joy’, and ‘Dig Deep’. It seems that you are mainly making songs about traveling and living. Is there anything you want to share with your music?  
SARITAH: Yes, you are right in the sense that life is a journey. My intention or wish is that people can feel inspired, uplifted, empowered or get some kind of healing through listening to the songs. When someone writes to me and tells me how much a certain song has helped or inspired them it brings me so much joy. Music can also bring solidarity – when I write about something I have been going through there are going to be others that can relate. Life can be overwhelming sometimes and music is magic in it’s way of carrying us through. I have heard people describe my music as spiritual… definitely Love (in an eternal, universal sense), joy, and faith are common threads through the lyrics, as well as respecting and protecting the planet, oneself, each other… plus the sheer wonder of being a human being alive on a planet spinning in an infinitely expanding universe!

Q: I could feel that you’re interested in social activities such as environmental issues from your music. Apart from music, what kind of issues are you interested in?  
SARITAH: Yoga, permaculture, surfing, capoeira, dance, are all things I love. I think it is crucial that protect what forests are left, as they are the lungs of the earth. I am interested in evolution of self, and the collective conscious, and the movement towards sustainable living – humans living in harmony with each other and the planet. I choose to be vegan because I know how much the meat industry is harming the planet.

Q: You were born in Seoul. Do you remember your childhood? Its experience affected your music? 
SARITAH: Definitely, Korea is part of who I am and I celebrate that! Although I left Korea when I was a baby, I have been fortunate to spend time there almost every year recently. I love spending time with my Korean family there. I love Korean food, I often cook Korean dishes at home such as dwenjang soup with spinach and tofu, as well as bindaeduk and memil guksu! I also love visiting temples, I always visit ‘Donghaksa’ near my Halmuni(grandmother)’s house everytime I am in Korea. My Halmuni showed me how she does the bows, and I sometimes practise this at home. We once did a ‘Templestay’ together with my Mum too, which is an experience I will always cherish! I have also studied a specific way of singing with Korean Shaman Music teachers, and this affected both me and my voice in a profound way.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Q: You performed many times in Korea. Which performance was the most memorable for you?
SARITAH: The recent acoustic show I did at Jamaica Wang in Hongdae was so awesome!! Such good vibes!! Thanks to my friend, Oh Jeongseok and Eastern Standard Sounds for making it happen! Jarasum International Jazz festival was also amazing – such a beautiful festival site and amazing production. Other shows that come to mind are APaMM (Asia Pacific Music Meeting) in Ulsan, TV shows MBC ‘Nanjang’ and EBS ‘Space’. Gwangmyeung Valley Festival was one of the biggest crowds I’ve ever played to and Grand Mint festival was cool too.

Q: How do you think about Korean reggae music? Any artist you want to work with or interested?
SARITAH: I am happy to be connected to the Korean reggae world. My friend Tehiun (folk/reggae singer) has just released his new album, and Kingston Rudieska are an awesome live band. It is wonderful that there are also reggae sound systems like Eastern Standard Sounds, (who also are a label and promoter) who are dedicated to bringing reggae music to the people.




Q: Tell us about the Australian music scene compared to Korean one.
SARITAH: The first thing that comes to mind is that Australia is a very big country compared to Korea, but yet has only half as many people as Korea. This means it can be more challenging for bands to travel and reach people in Australia!! But there are many great bands, venues and festivals. When I first performed in Korea in 2007, most people only knew 3 genres of music – classical, jazz and pop – but now many sounds are being made and embraced in Korea.

Q: You also have been invited to several international music festivals (Sierra Nevada World Music Festival (USA), Greenroom Festival (Japan), etc. Would you tell us about it?
SARITAH: I love visiting different countries, and I love performing at festivals!! They are the perfect place to share the music because the audiences are open and celebrating life as one. Memorable festivals that come to mind are Glastonbury (UK) which was awe inspiring, and Reggae Sun Ska (France). And it doesn’t even matter if you don’t speak the same language, as it is the energy, the melody, and the rhythm that speaks to people – music truly is a universal language. I especially love performing outdoors where I can sing to the land and the trees as well as the people! Festivals are also a place where you can see and connect with other artists which can be very inspiring.

Q: Please tell us how you are getting along.
SARITAH: I’ve been enjoying performing at some great summer festivals in the USA including Electric Forest Festival, California Worldfest, ShangriLa Festival. I also am grateful and blessed to have the time and space to do what I really want and need to do – write music!! So that’s what I’m focusing on – translating feelings, thoughts and ideas into lyrics, chords, melodies, beats…that become songs.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Q: What’s your plan for your new album? What kinds of message/sound are you going to put on your new album?
SARITAH: The next album will no doubt reflect the evolution I have gone through musically and personally since the last one . I don’t know yet exactly when it will be released, but I know it will be at the perfect time! I already have many of the songs and am taking time to write more. I really do my best to let the songs sound how they want to, without imposing any thought of ‘I’m going to write a ‘this’ or a ‘that’ sounding song.’ One of my favourite new songs talks about connection to the land, and the longing to see the land as it once was, before humans got crazy with ‘development’. In the meantime I have a new single called ‘Inner Wealth’ coming out in autumn/fall with a video that was filmed when I was in Hawaii recently. 

Q: What is your future plan or goal as a musician?  
SARITAH: To keep evolving and getting better at singing, songwriting and playing instruments. To continue to tour the world bringing music to the people. I also look forward to more collaborations with other conscious musicians.

Q: When are you playing in Seoul again? Do you have any other plan? 
SARITAH: At this stage I don’t have any plans, but I really hope it’s soon! In the meantime, I will be doing an online live streaming acoustic concert soon, that anyone around the world can tune in to! I did my first one recently and it was awesome! Anyone interested can just keep an eye on my facebook page for the date announcements.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Q: Lastly, would you like to say anything to your fans and Korean readers? 
SARITAH: I want to thank everyone for the support and interest. If you would like to check out more of my music, I have four releases out there – the latest album <Dig Deep>, plus <Ancient Forward>, <These Days/You’re the One EP> and <Gratitude>. and . Also, I want to deeply encourage everyone to follow your heart, follow your dreams! It is not always easy but it is the way!! Everyone has a unique gift to offer the world, and the world needs your unique gift to be complete! 


SARITAH 
Official Homepage: http://saritah.com/ 
Official Facebook: https://www.facebook.com/saritah.official

[인터뷰] SARITAH - 2015-10-05

SARITAH: 레게는 자연과 공존하는 치유의 음악 BY 김종규 - 2015-10-05

*원문 링크: http://webzinem.co.kr/2607


한국계 싱어송라이터 사리타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2013년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사리타(Saritah)의 공연을 처음으로 봤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자 잔디밭에 앉은 수많은 관객들은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했다. 처음 듣는 노래일텐데 사람들은 익숙하게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 역시 사리타의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사리타의 음악은 일상에 지쳐 상실했던 흥겨움과 기쁨을 마법처럼 다시 불러 일으켰다.

한국계 호주 싱어송라이터인 사리타는 레게, 소울 등 다양한 장르가 조화를 이룬 음악을 한다. 2004년에 첫 앨범 <Gratitude>를 발표하고 지금까지 총 네 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공연하고 있다. 그녀의 4번째 앨범 <Dig Deep>은 2013년에 라이선스 출시되었다. 그녀는 매 순간마다 삶의 대한 메시지와 흥겨운 가락을 들려주며 청중들과 깊이 호흡하고 교감하는 공연을 즐긴다.

올해 한국을 방문한 사리타는 5월 10일에 홍대 ‘자마이카왕’에서 깜짝 공연을 펼쳤다. 이 인터뷰는 그날 이후 여러 차례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사리타는 영어 뿐만 아니라 한국어로도 직접 답변을 적어 보내줬다(***한국어는 사리타의 동의 하에 번역되었다). 그녀가 전달하려는 의도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내용을 크게 손보지는 않았다. 바쁜 일정에도 성실히 답변해 준 사리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Q: 사리타,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SARITAH: 안녕하세요, 저는 싱어, 송라이터, 뮤지션 사리타입니다, 제 음악의 쟝르를 국한해야 한다면 레게/소울에 가장 가깝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저의 어머니는 한국사람입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살기도 했으나 대부분 호주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활동 중입니다. 사랑하는 한국의 음악애호가 여러분들과 소통하게 되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Q: 어떻게 레게 뮤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SARITAH: 제 기억으로는 13살인가 14살 때 아버지가 첫 레게 앨범으로 밥 말리의 비정규 음반을 사주신 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거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점점 더 좋아하게 된 거 같습니다. 물론 음악은 장르보다는 느낌이지요. 제게 와 닿으면서 감동과 소통을 주는 모든 음악을 사랑합니다. 

Q: 음악을 만들 때 어떻게 영감을 받는지?  
SARITAH: 제가 느끼는 감정, 자연, 주변 사람들, 우주, 그리고 성장해가는 자신과 지구상에서 인간이 주는 영향력 등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Q: 가장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SARITAH: 아주 많습니다! 밥 말리는 물론, 미드나이트, 미셀 엔디지오첼로, 에리카 바두, 마누 차오, 트리니티 루츠 등의 영향을 지금도 많이 받습니다. 라이브 뮤지션 중에서는 지미 클리프, 로키아 트라오레, 스틸 펄스 그리고 데미안 말리로부터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Q: 사리타의 노래 중 특히 ‘Gratitude’, ‘Tears of Joy’와 ‘Dig Deep’을 좋아합니다. 주로 여행이나 생활에 관한 노래를 만드는 것 같네요. 그 외에 다른 노래에 대해서도 말해주신다면? 
SARITAH: 네, 당신 말처럼 삶은 결국 하나의 여정이니까요. 저의 목적 또는 소망은 제 음악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영감과 희망을 주면서 동시에 치유의 음악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가장 커다란 희열을 느낄 때가 바로 제 노래를 듣고 많은 도움과 영감을 받았다는 글을 받을 때입니다. 또한 음악은 연대감을 줍니다. 저는 제가 겪은 경험에 관해 노래하지만 항상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산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지만 음악은 마술처럼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끕니다. 사람들은 종종 제 음악이 영적이면서 . . . 영원하고 보편적인 사랑, 기쁨, 믿음, 그리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과 지구에 대한 존경들을 가사에 담았다고 합니다. 하나 더 빠질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와 공전하는 지구 행성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입니다! 

Q: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환경 문제 같은 사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또 어떤 이슈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SARITAH: 요가, 친환경 채소경작, 서핑, 카포에라, 댄스 등을 좋아합니다. 지구상에 아직 남아있는 삼림을 보호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숲은 지구가 숨쉴 수 있게 해주는 폐이기 때문이지요. 저 자신이 발전하는 것과 지속 가능한 삶을 향해 연대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지구와 조화롭게 공존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육류업계가 지구에 큰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채식주의를 선택했습니다. 

Q: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린 시절이 기억이 나는지? 그러한 기억이 음악에 영향을 주었나요? 
SARITAH: 네, 한국은 저의 일부이며 천만다행이라 자축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 한국을 떠났으나 다행히도 자주 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매년 와서 공연도 하고 한국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해외에서도 시금치 두부 된장국, 그리고 빈대떡과 메밀국수를 자주 직접 요리합니다! 절에 가는 것이 너무 좋아 한국에 올 때마다 외할머니집 근처 ‘동학사’에 갑니다. 외할머니께서 절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한번은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템플스테이를 갔는데 평생 소중히 간직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소리와 전통 연희 음악을 강의하시는 선생님들에게서 가창법을 배웠는데 그 이후 제 목소리는 물론 제 자신에게도 심오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5월에 있던 홍대 자마이카왕에서의 공연을 마친 뒤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Q: 한국에서 여러 번 공연했습니다.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요?
SARITAH: 최근 홍대 ‘자마이카왕’에서의 아쿠스틱 솔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바이브가 너무 좋았습니다!! ‘동양표준음향사‘의 제 친구, 오정석과 태히언 덕분에 가능했었습니다!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도 경이로웠습니다 – 너무도 아름다운 페스티발 장소 그리고 프로덕션 등으로. ‘에이팜(울산 아시아 퍼시픽 뮤직 미팅)’, ‘MBC 난장’, ‘EBS 스페이스 공감’도 좋았습니다. ‘광명 밸리 뮤직 페스티벌’ 때는 가장 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였고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Q: 한국의 레게 뮤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함께하고 싶거나 인상적인 아티스트가 있는지?
SARITAH: 한국 레게 월드와 소통하게 되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제 친구이며 포크와 레게 싱어인 태히언은 새 앨범을 발매했고, 킹스턴 루디스카는 매우 훌륭한 라이브 밴드입니다. 또한 레게를 대중에게 전하는 데 큰 공헌을 하는 것과 동시에 레이블, 프로모터인 동양표준음향사 같은 레게 사운드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Q: 한국과 비교해서 호주의 음악 신을 이야기해줬으면 해요.
SARITAH: 우선 호주의 인구는 한국의 절반도 안되는 반면, 그에 비해서 땅덩어리가 훨씬 큽니다. 따라서 밴드들이 공연투어를 한다는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수많은 훌륭한 밴드, 공연장 그리고 페스티발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2007년도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했을 당시 대부분 사람들은 클래식, 재즈, 팝 이렇게 세 장르의 음악 밖에 모르는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장르들이 보급되면서 애호하는 것 같습니다.

Q: 미국 ‘시에라 네바다 월드뮤직 페스티벌’, 일본 ‘그린룸 페스티벌’ 등 해외의 여러 음악페스티벌에서 공연한 경험이 있잖아요.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SARITAH: 다른 나라들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페스티벌 공연을 좋아하다보니 해외 페스티벌 공연은 정말 금상첨화입니다! 페스티발에 모인 청중은 음악과 삶을 만끽하고자 열린 마음으로 모이기 때문에 페스티벌은 음악을 공유하기에 완벽한 곳입니다.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로는 한없이 경이로웠던 영국의 ‘글라스튼베리’와 프랑스의 ‘레게 선 스카’였습니다. 에너지와 멜로디, 리듬이 말을 대신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물론 대지와 나무들에게도 노래할 수 있어서 저는 야외공연을 특히 선호합니다. 또한 페스티벌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고 소통하면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Q: 최근 근황을 알려주세요.
SARITAH: 미국의 주요 여름축제라 할 수 있는 ‘일렉트릭 포레스트 페스티벌’, ‘캘리포니아 월드페스트’, ‘샹그리라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을 만끽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정말 원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축복 받은 시간과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해하는 중입니다 – 바로 작곡하는 작업이죠!! 저는 감정, 생각, 아이디어 등이 가사, 기타코드, 멜로디, 장단으로 노래가 되어가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2014 시에라 네바다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사리타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Q: 새 앨범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어떤 메시지/사운드를 새 앨범에 넣을 생각인가요?
SARITAH: 아마 마지막 앨범 이 나온 이후에 제 자신이 겪은 개인적, 음악적인 발전이 많이 반영될 것입니다. 아직 언제 나올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나올 때가 되면 나오지 않을까요! 이미 몇 곡이 준비되어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곡을 쓰려고 하구요. 저는 항상 ‘이러저런 사운드의 곡을 만들어야지’ 하고 정해놓기보다는 그 곡이 원하는 사운드가 되어 갈 수 있도록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 최근에 쓴 곡 중에 마음에 드는 곡 하나는 인간이 개발에 미치기 이전, 자연 그대로의 대지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담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다음 앨범 작업이 진행되는 사이에 ‘Inner Wealth’라는 곡이 최근 하와이에서 찍은 영상과 함께 가을에 먼저 공개될 예정입니다. 

Q: 음악가로서 이루고 싶은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SARITAH: 노래, 작곡, 악기 연주 모든 면에서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투어도 계속하구요. 또 의식을 갖춘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협업을 했으면 합니다.

Q: 한국에 다시 와서 공연할 계획이 있나요? 
SARITAH: 아쉽게도 현재는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만 빠른 시일 내에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그 사이에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지 들을 수 있는 온라인 스트리밍 어쿠스틱 라이브 공연은 어떤지요? 최근에 첫 온라인 라이브 공연을 하였는데 참으로 좋았습니다! 다음 온라인 라이브 공연을 계획 중이니 제 페이스북 페이지를 종종 방문하셔서 온라인 공연시간 발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리타의 음반들 photo by Official Saritah Facebook 


Q: 당신의 팬과 이 글을 읽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SARITAH: 지원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음악에 관해서 더 아시고 싶다면, 출시된 4장의 음반을 확인해주세요 – 최근에 나온 <Dig Deep>와 <Ancient Forward>, <These Days/You’re the One EP>, 그리고 <Gratitude> 입니다. 또 제가 모두에게 마음을 모아 해드리고 싶은 말은, 가슴이 원하는 것을 따르고 꿈을 따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 준 유일무이한 재능을 타고 났기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재능만이 세상을 완전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오로지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SARITAH 
Official Homepage: http://saritah.com/ 
Official Facebook: https://www.facebook.com/saritah.official

2015년 9월 11일 금요일

[인터뷰] 긱가이드 코리아 - 2015-09-11

[인터뷰] 긱가이드 코리아: 국내 공연 정보의 새로운 흐름 BY 김종규 - 2015-09-11

*원본 링크: http://webzinem.co.kr/2541


긱가이드코리아의 명함, 필자의 카메라 화질이 안 좋아 뿌옇게 나왔다 ⓒJongkyu Kim


과거에 비해 최근 국내에서도 유명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 소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공연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해외 유명 페스티벌 못지 않은 화려한 라인업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해외 뮤지션들 또한 아시아 공연시장의 프로모션을 위해 한국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지금 한국의 음악공연씬에서는 작지만 다양한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고 있다.

긱가이드 코리아(Gigguide Korea)는 공연 정보 사이트이자 평론을 제공하는 매체다. 빠른 정보력과 SNS을 활용한 친화력은 급속도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개설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긱가이트 코리아의 페이스북은 현재 구독자 3000명을 넘어섰다. 국내 음악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로는 흔치 않은 경우다. 게다가 그들만의 논조로 작성된 기사는 많은 음악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28일에 일렉트로니카와 힙합 씬의 유망주인 허드슨 모호크(Hudson Mohawke, 이하 ‘허드모’)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귀추가 주목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8월 7일 홍대 카페 슬로비에서 긱가이드 코리아의 편집장 김영준 씨를 만났다. 허드모 공연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운이 가시질 않았는지 그는 약간 들떠 있었다.


긱가이드 코리아 로고 (사진 출처 = 긱가이드 코리아 페이스북)


Q: 긱가이드 코리아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김영준(이하 김): 작년에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5월에 갔던 대만 여행에서 현지 음악 매체인 긱가이드 타이완(Gigguide Taiwan)을 알게 되었다. 운영자인 스티브 르겟(Steve Leggat)과도 만나서 참고가 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안 그래도 한국 공연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홈페이지를 작업해서 9월에 그럭저럭 완성을 했다. 긱가이드 코리아(Gigguide Korea)란 긱가이드 타이완을 레퍼런스(reference) 삼아 만들어졌고 그 유지를 이어 받았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타이완은 최근 운영이 힘들어져서 문을 닫았다.

Q: 긱가이드 코리아의 운영은 어떻게 되는가?
김: 공연 관련 정보들을 직접 취합해서 긱가이드 코리아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간소화된 공연정보와 관련 음악 링크가 첨부되어 있으니 사용자는 쉽게 찾아서 볼 수 있다. 공연 업체 당사자가 직접 우리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를 할 수도 있다. 홈페이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보완할 부분도 많다. 차후 리뉴얼을 할 때 보강할 생각이다.
더불어 공연의 프리뷰나 후기 기사를 작성하는 전문 필진 분들이 몇명 상주해 있다. 공연 관계자에게도 좋은 인상을 준 스퀘어푸셔(Squarepusher) 리뷰,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내한 사건 사고, 빌 캘러한(Bill Callahan), 최근 들어서는 키스 에이프(Keith Ape) 기사가 음악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전체적인 홈페이지 조회수를 보면 기사의 비중이 크다. 기사를 써주신 필진들에게는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필히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7월 28일에는 허드슨 모호크의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 기획사로서 첫 공연을 치룬 셈이다. 

Q: 긱가이드 코리아의 기사는 어떻게 쓰여지는가? 종종 공연 홍보도 하는 것 같다.
김: 처음에는 정보 위주로만 올렸지만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려면 기사를 써내야만 했다. 제일 처음 올린 글은 처치스(Chvrches)의 내한 기사인데 좀 급히 올린 감이 있다. (웃음) 우선 지인들 중에 일렉트로니카 쪽으로 글을 굉장히 잘 쓰는 조대협 씨에게 필진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후 필진들을 더 모아 기사란의 공간을 채워서 지금은 어느 정도 볼만 해졌다. 앞으로 기사 영역은 필진들에게 비중을 실어줄 예정이다. 나는 사이트 관리와 정보 업로드 분야에 집중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웃음)
요즘 긱가이드 코리아에게는 500석 미만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홍보해달라고 요청이 온다. 근데 우리는 모든 공연의 정보를 올리거나 글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봤을 때 좀 의미있는 공연인 경우에만 기사를 작성한다. 그 경우에는 우리 쪽에서 먼저 컨택을 해서 서로 홍보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운이 맞아서 공연기획사로부터 프레스로 초대 받으면 우리 쪽 페이스북에서도 따로 그 공연을 유료 홍보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 진행을 하다보니 연관되는 곳도 많아져서 이제는 좀 알려진 것 같다. (웃음)

Q: 대부분 웹진의 필진은 거의 동인 활동과 비슷해서 무보수다.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김: 솔직히 액수가 많지는 않다. (웃음) 내 생각에는 원고료를 조금이라도 지불하지 않으면 되게 사적인 관계처럼 되버린다. 원고료를 지급해야 서로가 프로페셔널한 영역에서 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컨트리뷰터(Contributor)에게 양적인 면보다 질적으로 좋은 글을 요구하는 편이다. 대체로 독자에게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주는 글을 좋아한다. 그렇게 공연을 홍보하다 보면 프레스석을 얻게 되는데 그분에게도 수고했으니까 드린다. 정리하자면 긱가이드 코리아에서는 컨트리뷰터에게 적게나마 원고료를 드리고 같이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Q: 최근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중심이다.
김: 특정한 장르를 더 선호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 내 시각에서 보자면 전체적인 음악계 흐름이 일렉트로니카로 흐르고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에서 열리는 공연만 봐도 일렉트로니카 계열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연이 열리고 있다. 그 동안 많은 공연을 다녔지만 최근 음악 페스티벌 중에서는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ltra Music Festival)이 규모나 스케일 중에서 가장 컸다. 또 다른 대형 페스티벌인 글로벌 게더링(Global Gathering),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World DJ Festival), 스타디움(5tardium) 등만 봐도 일렉트로니카에 몰려 있다. 그 밖에 좋은 해외 디제이들을 데리고 오는 이태원 클럽 케이크샵(Cakeshop)과 공연 기획사 페이크버진(Fake Virgin), 그리고 이번에 허드모를 데려온 우리 긱가이드 코리아 등… 이런 추세다보니 일렉트로니카에서 계속 쓸만한 거리들이 생긴다. 결국 우리의 주된 포지션도 일렉트로니카 쪽으로 치우친 모습이 되었다. 다른 장르는 일단 동향을 주시 중이다. 사실 우리도 재즈나 익스페리멘탈 음악을 쓰고 싶다. (웃음)

Q: 뜬금 없지만 공연을 많이 다녔다고 들었다. 일생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연은 언제인가?
김: 2006년 펜타포트에서 스트록스(The Strokes)를 봤을 때다. 트라이포트에서 펜타포트라는 이름으로 바뀐 첫 번째 락페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스트록스를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스트록스는 정말 멋졌고 잘 생기고 페셔너블하기도 했으니까. (웃음) 스트록스가 ‘Last Night’을 부르자 하늘 위에서 비가 착 내리는 광경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공연과 무대가 너무 좋았고 실제로 스트록스를 봐서 기쁨에 들뜨기도 했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 굉장히 멋있었다.

Q: 최근에 좋아하는 뮤지션은?
김: 허드슨 모호크다. (웃음) 공연을 기획하다보니 단순히 좋아하는 것 하고는 느낌이 다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 뮤지션에 빠져들게 되니까. 하루종일 그 뮤지션만 생각하고 하루종일 그 뮤지션의 음악만 듣는다. 당일 공연도 너무 좋았고. (웃음) 그건 그렇고 음악은 좋으면 다 듣는다. 올해 제일 좋았던 아티스트는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 미겔(Miguel),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 턱시도(Tuxedo) 정도다.


허드슨 모호크 내한 공연 모습. (사진출처 = Andrew Kim의 페이스북)


Q: 그러면 얼마 전에 했던 허드모의 내한 공연은 어땠나? 공연 후 올린 리포트가 인상적이다.
김: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워낙 열광적이어서 허드모가 굉장히 즐거워했다. 나중에 공연 후기 코멘트들을 모아서 허드모에게 전했는데 한 네티즌이 쓴 “디제이 쉐도우(DJ Shadow) 내한 때보다 훨씬 좋았다”는 코멘트를 읽고 좋아했다 하더라. (웃음) 허드모의 공연 뒤 펼쳐진 그레이의 디제잉도 인상적이었고. 공연 수익은 별로였지만 어떻게든 잘 마무리되었다. (웃음)
허드모 풀 리포트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공연 내내 고민했던 지점을 작성한 것이다. 공연을 기획하면서 관련 컨텐츠를 생각하는 것도 기획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측면까지 널리 알려주고 싶다. 이번 허드모 공연을 진행 하면서 곁에서 모든걸 다 보고 들었으니 누구보다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겠나. 그래서 오픈해도 될만한 것들은 리포트에 다 공개했다. 뻔한 감상보다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가 가장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떤 공연이 좋은 공연이냐”이다. 리포트에 적힌 사례처럼 조명과 스피커만 잘 케어해도 훨씬 더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리포트 작업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공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단순히 우리 안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Q: 근데 리포트 내용상 동종업계에 있는 페이크버진을 묘하게 의식하는 것 같았다.
김: 우리는 공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드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공연을 할 때 허접하다거나 별로인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전에 좋은 공연들을 많이 참고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페이크버진에서 근래 진행한 공연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새벽 시간대에 홍대 롤링홀에서 디제이셋으로 공연을 진행한 사례가 거의 드물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하니까 페이크버진 스타일을 참고 안 할 수가 없었다. 아티스트의 장르나 공연장이 달랐다면 또 다른 상황이 됐을 것이다. 원래 디제이셋은 베뉴(venue)를 가진 팀이 하기 유리하다. 근데 페이크버진은 장소가 없는데도 디제이 공연을 많이 했고 계속해서 그 지점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우리도 이번 공연을 진행하면서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 결국 각자 해답을 찾는 중인 것이다.

Q: 허드모 내한으로 수익은 얻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앞으로 해외 아티스트 내한을 계속 추진할 계획인가? 
김: 그렇다. 일단 내가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이번에 긱가이드 코리아는 첫 내한 공연을 성사시켰다. 부연적으로도 얻은 것이 많은데다 무엇보다 프로모터로서 허드모를 인터뷰를 했고. (웃음) 뭐든 처음이 제일 어렵고 그래서 공연기획에서는 어떤 뮤지션을 처음 데려오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번은 처음이라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앞으로 선택의 폭도 늘어나서 좀 더 의미가 있는 뮤지션을 데려오기 용이할 것이다. 지금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계속 이어 나가면서 즐겁게 하고 싶다. 우리는 웹진도 가지고 있으니까 차근차근 지속해 나간다면 훗날 나름의 영향력이나 권위감을 얻을 것이라고 본다.

Q: 근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원래 그냥 음악 듣는것을 좋아하고 공연 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김: 모르겠다. (웃음) 아직 나한테는 어색한 질문이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공연을 원래 좋아하니까 내 관점이 들어간 글을 노출하게 됐는데, 그러다 문제의식이 발견되어서 그것을 해결해보려고 노력을 했고… 지금은 공연을 직접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아져서 공유하고 싶은 것 같다.

Q: 처음에 긱가이드 코리아에서 왜 본명이 아닌 닉네임인 앤드류 킴(Andrew Kim)으로 나서게 되었나? 
김: 앤드류 킴의 앤드류는 원래 안드레아로 내 세례명이다. (웃음) 일종의 증명할 시간이 필요했다. 음악커뮤니티 사케르(Sacer)란 사이트에서는 영준비라는 이름의 운영자이고 과거에 이런 저런 해프닝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웃음)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내 이름을 걸고 시작하면 그 이름에서 쌓인 오명과 오해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익명에 가까운 앤드류 킴으로 활동한 것이다. 영준비 시절처럼 즉흥적인 이유가 아니라 앞으로 이런 작업들을 진지하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허드슨 모호크 내한 공연 모습. (사진출처 = Andrew Kim의 페이스북)


Q: 기왕 만났으니 사케르 이야기도 하나 묻고 싶다. 7월에 사케르의 한 유저가 밴드 혁오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날 트래픽이 초과될 정도로 반응이 엄청났다. 운영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 그 일 터지고 나서 10만 명 정도 들어왔다. (웃음) 웨이브(weiv) 자유게시판 때부터 그랬지만 사케르는 원래부터 한국 인디음악에 비판적인 포지션에 있어 왔다. 경계선상에서 일부러 거리를 두면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편이 맞겠다. 그간 사케르에서는 혁오 말고 다른 밴드들을 향해서도 레퍼런스나 표절 이야기들을 많이 지적했다. 좋아하는 밴드에 애정이 있다면 무작정 옹호하기 보다는 다른 의견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격한 언행만 아니라면야… 덕분에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많이 겪었지만. 이전에는 골방에서 몇몇이 키보드 배틀하는 느낌으로 싸우고 말았는데, (웃음) 이번 혁오 건은 이렇게까지 글이 많이 퍼질 줄 예측 못했다.

Q: 그렇다면 최근에 관심있게 보는 한국 아티스트가 있는가?
김: 러브엑스테레오(Love X Stereo)는 잘 됐으면 하고 바라는 팀이다. 또 김사월x김해원도 좋아한다.

Q: 한국의 음악 집단이나 레이블 중에서 꼽으라면? 긱가이드 코리아에서 몇 군데 거론한 것으로 안다.
김: 웹진이면서 공연도 하는 두인디(DOINDIE)는 꼭 한번 거론하고 싶었다. 워낙 한국 인디록과 공연에 애정을 담아서 일하기 때문에 두인디의 공연은 믿고 봐도 좋다.
음반사 영기획의 아티스트들 중에 좋아하는 팀들이 좀 있는 편이다. 시마킴, 그레이, 사람12사람 등. 영기획 뮤지션들은 전반적으로 다 괜찮다. 문제는 의외로 많은 관심을 못 받고 있다는 거다. 해외에서는 굉장히 주류인 음악 스타일인데도 말이다. 영기획은 이번 허드모 공연을 같이 도모해주셨고 아낌없이 도움과 조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굉장히 사이가 돈독해진 느낌이다. (웃음)
그리고 예전에 앵글매거진(Angle Magazine)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앵글매거진은 울산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 겸 웹진이다. 영남, 호남 상관없이 한국의 남쪽에 있는 아티스트들을 데려다가 글을 쓰고 공연하고 갖가지 기획들을 한다. 우선 그들의 발상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다. (웃음) 지방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고 싶다.

Q: 작년에 했던 인터뷰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홍대로 넘어 오면서 차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가는 중이라고 언급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보는가? 
김: 뭐, 일단 과거에 자본과 영향력이 전무했음에도 해외 뮤지션을 불러서 수차례 공연을 성사시킨 슈퍼칼라슈퍼(Super Color Super)의 사례가 있고. 확실히 그 전과 그 이후의 환경이 변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내한공연을 추진하고 있으니까. (웃음) 아무튼 어디를 가도 다른 문화권끼리 섞이게 되면 여러가지 측면이 새로 생긴다. 물론 단점도 많겠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국내 음악 씬에 기여하는 장점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앞으로도 내한 공연을 계속 추진할텐데 후보가 있는가? 궁극적으로 부르고 싶은 팀이라든가.
김: 허드슨 모호크 라이브셋. (웃음) 궁극적으로 부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다. 급이 까마득히 높은 친구들이지만 그래도 이 일을 하니까 언젠가는 부르고 싶다. 아마 대형 페스티벌에서 먼저 부르겠지만 (웃음) 

Q: 앞으로 긱가이드 코리아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10년 후에 어찌 될 것 같은가?
김: 이 일을 하면서 너무 큰 욕심을 바라거나 하진 않는다. 단지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탭들에게 원고료를 꼬박꼬박 주면서. (웃음)


 * (부록) 긱가이드 코리아 선정 추천 음반



Jamie xx – In Colour: 올해의 가장 따뜻한 일렉트로니카.




Kendrick Lamar – To Pimp A Butterfly: 정체성과 예술의 경계에서…



Tuxedo – Tuxedo: 블루아이드 소울(Blue-eyed soul)의 유일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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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9일 수요일

[인터뷰] 이채언루트 - 2015-08-19

이채언루트: 두 악기가 들려주는 이채로운 음악 하나 BY 김종규 - 2015-08-19

*원본 링크: http://webzinem.co.kr/2506


강이채(바이올린/보컬), 권오경(베이스/코러스) ⓒJongkyu Kim

‘이채언루트’는 강이채(바이올린/보컬), 권오경(베이스/코러스)으로 구성된 듀오 밴드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현지의 다양한 음악 신에서 활동해온 강이채와 솔루션스의 베이시스트 권오경의 결합으로 일찍이 주목 받았다. 우아한 바이올린, 진중한 베이스, 그리고 소울풀한 보컬이 하나의 음악이 되어 조화롭게 흘러간다. 팝과 클래식, 재즈, 월드뮤직 등의 경계를 넘나 들며 이채로운 음악을 들려 주고 있는 이들은 2015년 4월에 첫 EP 앨범 [Madeline]을 발표했다.

이채언루트는 버스킹과 클럽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더불어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에 세션 연주자로도 참여해 활동 영역을 계속 확장하는 중이다. 대중과 평단에서는 이 흔치 않은 조합을 벌써부터 ‘올해의 신인’으로 주시하고 있다. 인터뷰는 8월 15일 홍대 에이브릭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인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Q: ‘이채언루트’라는 밴드 이름의 의미가 궁금하다.
강이채: 내가 멜로디를 담당하니까 나를 의미하는 ‘이채’를 이름 앞에 썼다. 멜로디 밑에는 밴드의 기반을 베이스의 오경 오빠가 담당하고 있으니 그것을 뜻하는 루트(Route). 즉, ‘루트 위에 있는 이채(Echae en Route)’라는 뜻이다.

Q: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이채언루트를 만들었는지? 
권오경: 작년에 한 재즈 콩쿨을 준비하던 중 이채의 데모를 듣게 되었다. 연주자인줄로만 알았는데 주변에 소개시켜주고 싶을 정도로 노래를 너무 잘했다. 그러다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강이채: 처음에 ‘이채앤크립스’라는 트리오로 시작했다. 근데 드럼의 김수준 씨가 군 문제로 함께 할 수 없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약간 더 실험적인 음악을 했다.

Q: 바이올린과 베이스라는 조합은 흔치 않다. 함께 연주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강이채: 드럼이 빠진 빈 공간을 채우고자 둘이서 연구하다보니 실력이 많이 느는 것 같다. 바이올린과 베이스가 가진 한계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예전부터 베이스라는 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멜로디 악기인 바이올린으로는 채울 수 없는 화성이나 리듬적인 부분을 베이스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권오경: 사람들이 특이하게 봐주는 것도 좋은 요소 중 하나인 것 같다.

Q: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권오경: 교회에 기타 치러 갔다가 베이스를 치게 됐다.
강이채: 부모님께서 6살 생일날 바이올린을 선물로 주셔서. 

Q: 강이채 씨는 두 개의 바이올린을 사용하는데 활용법이 어떻게 되는가? 
강이채: 하나는 클래식 바이올린이고 다른 하나는 5현 바이올린이다. 5현 바이올린은 줄 하나가 더 있어서 낮은 음역대를 커버할 수 있다. 그래서 오빠가 반주하거나 솔로할 때 맞춰서 기타처럼 스트로크를 칠 수 있다.

Q: 권오경 씨의 베이스도 5현이던데. 
권오경: 5현 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저음을 하나 더 낼 수 있다. 사실 자켓 사진에서 내가 들고 있는 베이스를 얼마 전에 잃어버렸다. 이채언루트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 베이스긴 하지만. 
강이채: 진짜 궁금하다. 주인 잃은 베이스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권오경: 지금쯤 땔감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다들 웃음)


4월에 발매된 이채언루트의 EP 앨범 [Madeline]


Q: EP 앨범 [Madeline]의 앨범은 어떻게 제작되었나?
강이채: [Madeline] 앨범은 자체 제작으로 나오게 되었고, 우리 둘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했다. 자켓사진은 충무로에 있는 한 빌딩 옥상에서 찍었다. 사진 작가 언니와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친하셔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Q: 이채언루트의 곡은 어떻게 누가 담당하고 있나? 공동 작업인가?
강이채: 이번 [Madeline]에는 예전 실험적인 구성 때의 곡들이 담겼다. 그래서 내가 쓴 곡이 많이 들어갔다. 지금은 [Madeline]에 안 실린 곡들이 훨씬 많은데 거의 공동 작업한 곡들이다. 아마 정규 음반에는 반반씩 실릴 것이다.

Q: 앨범 제목이자 마지막 곡인 ‘Madeline’은 어떻게 쓰이게 되었나? 
강이채: 지하철을 오래 탔던 적이 있는데 뜬금없이 어떤 상상을 했고, 그게 곡으로 나왔다. 왜 그게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Q: ‘Run’은 굉장히 강렬한 연주곡인데 하모니가 멋지다. 음원 버전에서는 드럼도 들어가 있던데.
강이채: 음원에는 이전에 함께 팀을 이뤘던 김수준 씨의 드럼이 들어갔다. ‘Run’은 유달리 연습을 많이 한 곡이다. 의미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달리는 곡이고. (웃음) 연주자로서 테크닉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연주곡을 하나쯤은 넣고 싶었다.




Q: 공연 때 ‘Uneasy Romance’를 부르기 전에는 주로 “요즘 연애하기 어렵다”라는 멘트를 하고 시작한다. 원래 그런 내용의 곡인가?
강이채: 관객 분들도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언급을 하곤 한다. 곡을 쓸 당시 불안정한 연애상태일 때 썼던 곡이라서. 

Q: ‘A Song Between Us’라는 곡은 선우정아 씨하고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강이채: 작년에 라이브앤다이렉트에서 선우정아 언니와 함께 콜라보 영상을 찍었다. 그때 선우정아 언니를 처음 만났는데 내 데모를 들은 언니의 제안으로 'A Song Between Us'도 촬영했다. 선우정아 언니는 내가 부르는 노래를 괜찮다고 말해주셨고, 이 곡의 제목도 직접 지어주셨다. 개인적으로 뜻 깊은 곡이다. 언니 덕분에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Q: 노래에 영어 가사가 많은데 어째서인가?
강이채: 미국에서 살았던 시절에 썼던 곡이라서 그런 것 같다. 연주자여서 그런지 관객에게 솔직한 심정을 담아 노래하기가 아직은 쑥쓰럽다. (웃음) 

Q: 이채언루트의 곡들 중에 좋아하는 곡을 하나만 꼽으라면?
권오경: ‘A Song Between Us’가 좋다. 이채언루트다운 노래라고 생각한다.
강이채: ‘Uneasy Romance’를 꼽겠다. 

Q: 팬들과 소통하려고 수요일마다 아프리카 티비 방송을 한다고 들었다. 촬영하고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강이채: 내 작업실에서 하고 있다. 매주 하려고 하는데 이채언루트와 각자 개인 활동이 많아서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오경: 아프리카 티비 사장님이 이 인터뷰를 보시고 이런 좋은 콘텐츠를 메인에 홍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다들 웃음)

Q: 이채언루트는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고향이 어디인가?
권오경: 경주에서 태어났는데 자란 곳은 서울이다. 지금은 경기도 구리에서 산다.
강이채: 진주에서 태어났다.

Q: 두 사람은 이채언루트가 아닌 개인 활동으로 해외에서 음악을 했다. 각자의 경험담을 들려줬으면 한다. 
권오경: 아무래도 한국은 홈그라운드다보니 팬들도 따뜻하게 받아주고 마음이 편하다. 솔루션스로서 해외에 나갔을 때는 음악적으로 훨씬 좋아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반면 무대에서는 관객들과 소개팅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웃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 좋은 느낌을 가지고 만나는 소개팅 같았다. 해외 관객들이 어느정도 우리를 알고 무대를 찾는 것에서도 놀랐다. 노래를 따라 부르시기도 하고. 한국에서처럼 해외에서도 음악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강이채: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의 특성이겠지만 확실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악기 자체를 이해하는 관객이 한국보다 훨씬 많았다. 즉흥 솔로 같은 실험적인 연주를 선보일 기회도 많았고. 재즈나 집시재즈는 원래 그들의 음악이니까. 그래서 해외에서는 음악적으로 더 자유롭게 연주할 수는 있는데… 직접 소통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이 좋은 것 같다. 한국 관객들은 피드백도 빠르고 열정적인 면이 있다.




Q: 근래 이채언루트의 음악에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권오경: 요즘에는 음악보다는 다른 것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다. 가령 책을 읽는다든가 아름다운 곳에 갔을 때 곡이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강이채: 유튜브로 접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의 영상들에서 얻곤 한다. 

Q: 휴식할 때 무엇을 하며 주로 시간을 보내는가?
강이채: 음악을 듣는다. 집이든 작업실이든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음악만 듣는다.
권오경: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뮤지션이다보니 아침에는 일이 없다. 그때 텔레비전 다시보기를 본다.

Q: 요즘 가장 즐겨듣는 음악은?
강이채: 소울 음악을 좋아한다. 그루브가 있으면서 듣고 있으면 영혼을 달래주는 것 같고… 디안젤로(D’Angelo)를 많이 듣는다. 
권오경: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고 신곡 위주로 찾아 듣는다. 아침에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오늘 뭐 나왔나?’ 하면서 음원사이트를 둘러보는 거다. 인디와 주류, 밴드와 아이돌을 따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다 들어본다. 들으면서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하면서 듣는다.

Q: 장르 불문하고 좋아하는 뮤지션 세명을 말한다면?
권오경: 엠지엠티(MGMT), 패션 핏(Passion Pit), 비틀스(Beatles).
강이채: 에밀리 킹(Emily King), The 1975, 디안젤로. 

Q: 두 사람 다 외모적으로 스타일이 좋고 개성이 확고한 것 같다.
권오경: 스타일이 좋아야 할텐데. (웃음) 이채의 스타일은 같은 팀인 내가 봐도 너무 맘에 들지만, 나는 아직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 직캠 영상이 있다고 들었지만 차마 못 보겠더라. (다들 웃음)
강이채: 지금의 민트색 머리는 나 스스로를 기록하고 싶었던 마음에… 어떤 터닝포인트 같은 일을 겪었는데 마음가짐이 180도 바뀐 계기가 됐다. 그래서 내가 가진 룰을 깨고 싶었고. 마침 민트색을 좋아하니까 머리색을 민트로 바꿔 버렸다. 덕분에 한번 본 사람은 절대 나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웃음)

Q: 이채언루트 결성 후 지금까지 다양한 공연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은? 
강이채: 6월에 있었던 두번째 단독공연 “위로”는 지금도 감명 깊다. 준비할 때 공간에 유별나게 신경을 썼고 우여곡절도 많아서 힘들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딱 원하는 분위기의 공간에서 공연을 해서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했다.
권오경: 나도 그렇다.


6월 28일 이채언루트의 두 번째 단독공연 “위로” (사진출처=이채언루트 페이스북)


Q: 두 사람은 다른 밴드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채언루트와 어떤 점이 다른가?
권오경: 솔루션스와 더불어 슈퍼이고(Superego)를 하고 있다. 슈퍼이고는 말 그대로 연주팀이다. 이채언루트는 팝적인 면이 있는데 슈퍼이고는 그런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연주에만 집중하는 밴드다. 베이시스트로서 연주에 대한 욕심을 여기서 해결하고 있다. 연주자에게는 자기 연주를 펼칠 수 있는 자리가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음악을 계속하기 힘들다.
강이채: 더스키80(Dusky80)이라는 집시재즈 밴드에 있다. 더스키80에서는 신나게 연주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이채언루트와는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이채언루트에서는 우리가 가진 색깔이 굉장히 많이 드러내야 하다보니 계속해서 고민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만 매번 그렇지만은 않다. (웃음) 그런데 더스키80에서는 창작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고 진짜 연주만 잘하면 되니 마음이 가볍다. 내가 클래식을 벗어나게 된 계기가 집시재즈에 빠져서이기도 하고. 

Q: 음악을 하면서 좋았던 순간과 안 좋았던 순간은? 
권오경: 어렸을 때라 음악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울예대 입시를 준비했던 과정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에 10시간 씩 넘게 반복하면서 연습을 했다. 그렇게 1, 2년이 지나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침내 베이스를 기능인로서 연주하게 되었으니까. 안 좋았을 때는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도 잘 구현이 안되거나 제대로 어필이 잘 안될 때… 나에게 음악이란 재능이 없는 것인가 하는 고뇌에 빠지는 때 같은, 그런 안 좋았던 순간들이었다. 지금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강이채: 음악을 하면서 좋았던 적은 말로는 전달이 안되는 감정들을 음악이 도와줄 때가 아닌가 싶다. 지난 7월에 개인 일정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공연을 했다. 근데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다 보니 그곳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이 되질 않았다. 그러다 공연 멤버들과 합주를 한번 했는데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잘 몰라도 그냥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더라. 맨처음 오빠를 만나서 합주를 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것인지는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웃음) 아무튼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할 때마다 음악이 진짜 대단한 거구나 싶었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권오경: 합주를 하고 있으면 서로의 마음이 전달된다. 지금 이 사람의 기분상태가 좋은지 나쁜지가 느껴진다. 특히 연주음악이면 더 그렇다.
강이채: 안 좋았던 순간은… 나라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인으로서 공연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내 마음이 다른 누구를 위로해줄 상태가 아닌데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달래야될 때가 힘들다. 오늘 계속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태였는데 아까 ‘A Song Between Us’를 하다가 울 뻔했다. (웃음) 와주신 관객분들이 너무 좋았다. 아, 이 경우는 음악을 하면서 좋았던 순간에 해당된다. (웃음)

Q: 신곡이나 새 앨범은 언제 나오고 어떤 것이 담길 것인가?
강이채: 9월까지 집중해서 싱글곡 2개 정도를 낼 계획이다. 그 중 한 곡은 누군가의 피처링이 들어간다. 누군가를 염두해두고 곡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규앨범은 내년쯤 나올 예정이다. ‘Run’ 말고도 연주곡이 꽤 있는데 아마 정규 앨범에 들어갈 것 같다.

Q: 이채언루트로서 가장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강이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이다! 예전에 갔었는데 진짜 페스티벌다운 페스티벌이었다. 근방 재즈클럽들이 전부 공연하고 있고, 야외무대는 진짜 기가 막히고, 거리 풍경은 말 그대로 멋있다.
권오경: 나도 그럼 거기 하겠다. (다들 웃음) 잘은 모르지만 우리와 어울릴 것 같다.


 이채언루트 (사진출처=이채언루트 페이스북)


Q: 10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될 것 같나? 
강이채: 10년 후에는 공연의 고수가 되어 있을 것 같다. (웃음) 앨범이 많이 쌓여 있었으면 좋겠다.
권오경: 이채언루트로 앨범을 많이 냈으면 좋겠다. 아니면 싱글곡을 많이 발표하던가.

Q: 이채언루트의 팬과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마디를 남긴다면.
강이채: 관심 가져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음악을 열심히 해서 점점 더 기대가 되는 밴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권오경: 더 열심히 할테니 지금처럼 저희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채언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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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7일 금요일

[인터뷰]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 2015-07-17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그렇게 류이치 사카모토를 나누다 BY 김종규 - 2015-07-17

*원본 링크: http://webzinem.co.kr/2304


(사진제공 =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Sakamoto Social Project Korea, 이하 skmts_kr)는 국내에서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의 모든 소식을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011년 사카모토의 내한 공연을 계기로 결성된 이래, 꾸준히 웹페이지와 SNS를 통해 사카모토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음악감상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해 인두암 진단을 받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뒤 휴식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카모토의 근황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사카모토의 프로젝트 앨범 의 음악감상회가 있었다. 홍대 살롱드팩토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skmts_kr의 감상회는 지금까지 4년간 진행되어 오면서 국내 음악팬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고 있다. 얼마 전 6월 9일 화요일 저녁, skmts_kr의 매니저 김재익씨를 홍대 약다방 봄동에서 만났다. 지금까지 skmts_kr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 그의 모습은 젊지만 강인했고 목소리에는 막힘이 없었다. 인터뷰는 2시간 가량 진행됐다. 


Q: skmts_kr의 전체적인 활동은 어떻게 되는가? 
김재익(이하 김): 기본적으로 skmts_kr의 블로그나 SNS를 하면서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음악감상회 관련해서는 영상 셀렉팅부터 자막과 번역 작업, 색감 조정 등이 있고. 홍보를 위한 포스터 디자인, 장소 대관 섭외 및 현장 음향 체크 등을 한다. 최근에는 외부 협력과 관련해서 음반사를 비롯한 바이럴 마케팅 업체 등과 함께 업무 진행을 하고 있다. 

아울러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 나오미앤고로(Naomi & Goro)의 고로 이토(伊藤ゴロ), 윤상을 비롯하여, 사카모토의 포토그래퍼를 담당하면서 W Korea와 엘르 등의 패션지에서 활동하는 라마 리(Rama-lee)도 인터뷰 했다. 현재는 브라질 출신의 첼리스트 쟈키스 모렐렌바움(Jaques Morlenbaum)과 밴드 하비누아주의 인터뷰를 예정에 두고 있다. 

그 외에는 사카모토의 주변 인물들의 소식은 물론 그에게 음악적으로 영감을 얻었거나 비슷한 색깔의 국내 뮤지션을 소개하고 있다. 이걸 혼자 다 한다. (웃음) 

Q: SNS상에서 엠씨스나이퍼의 결혼 소식을 사카모토에게 전하기도 했다. 
김: 엠씨스나이퍼의 결혼 소식이 실린 보도자료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는데 이걸 사카모토 쪽에서도 공유하더라. 그 일을 한국 인터넷 신문 매체에서 기사로 다뤘고, 그걸 본 엠씨스나이퍼가 알게 된 것이다. (웃음) 최근 몇개월 전부터 SNS 채널에서 별도의 코멘트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의견이 녹아있는 이야기는 입장 분리를 해야할 것 같았다. 너무 공적인 느낌보다는 친밀한 자세로 나서는 것이 소셜마케팅 관리 차원에서도 편하고. (웃음) 

Q: skmts_kr를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 사카모토가 2011년 1월에 <Playing the Piano 2011 Korea> 내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즈음, 2010년 쯤으로 기억한다. 10년 만에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거물급 뮤지션이 내한을 오는데도 분위기가 너무 조용했다. 반면 일본 현지 반응은 뜨거웠는데, 주로 투어를 다녔던 미국이나 유럽 등의 국가가 아닌 가까운 한국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또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유스트림(Ustream)을 통해 생중계 한다고 해서 더 그랬던 것 같고…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이런 정보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사진제공 =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우선 트위터로 홍보했다. 과거 상상공장의 ‘김기자의 인디속 이야기’ 쪽에서 일을 하기도 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처음에는 공연 정보가 올라오면 구글에서 번역해서 내 트위터 계정으로 홍보를 했다. 그러다 당시 사카모토 측에서 진행하던 캠페인인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에 착안해서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skmts_kr)’ 계정을 별도 개설했다. 이후부터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좀 더 긴 분량의 정보… 이를테면 방송이나 사인회가 포함된 내한 스케줄을 정리했다. 여유가 될 때는 직접 사인회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정보가 한데 모이니 팔로워도 늘고 트래픽도 증가했다. 사카모토 측에서도 skmts_kr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봐줘서 이후 정식적으로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인 2012년에는 사카모토가 트리오 구성으로 내한 했는데 당시 국내 에이전트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Q: 17살부터 사카모토의 팬이라고 들었다. 
김: 처음부터 사카모토의 음악을 찾아서 들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엑스재팬(X-JAPAN)이나 글레이(Glay),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 같은 쎈 밴드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2003, 2004년 쯤에 사카모토를 알게 되었다. 당시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주인 뉴에이지가 한창 붐을 일으키던 시절이어서 그런 것도 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라든가 ‘Energy Flow’, ‘Railroad Man’ 등을 자주 들었다. 

근데 찾아보니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왔고 활동 역시 다방면에서 펼쳐온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뉴에이지 뿐만 아니라 전자음악과 영화음악,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는 뉴스 같은 것들 말이다. 주된 활동 거점이 일본 보다는 미국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전까지 내가 알던 아티스트들과는 너무 달라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Q: 사카모토의 음악은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은가. 
김: 곡이 절정으로 가면 갈수록 비장미가 흘러 넘친다. 반면 곡이 끝날 때 즈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정심을 찾게 만든다. 영상회 때 일을 예로 들면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나오는 순간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쉰다. 다들 ‘역시 이때를 기다렸어’ 하는 마음 상태일지도. (웃음) 사카모토의 음악은 우울하다 못해 쓰러진 사람을 일어서지 못할 때까지 꾹 누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슬그머니 일으켜 세운다. 그것이 사카모토식 치유법인 것 같다. (웃음) ‘Merry Christmas, Mr. Lawrence’든 ‘The Sheltering Sky’든. 



우울한 10대 시대 시기를 보내면서 사카모토의 음악을 많이 찾아 들었다. 아마 정서적인 면에서 많이 귀에 들렸던 것 같다. 과거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YMO) 시절 때의 음악을 들어보면 음색이나 기본적인 진행이 전체적으로 뉴웨이브 풍이라서 신나긴 하다. 근데 우리가 익히 아는 EDM, 테크노 계열의 넘버들처럼 밝은 기세의 음악은 아니다. 그런 부분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지. (웃음) 그런 성향이 피아노 솔로 곡에도 묻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의 클래식 편성을 이루는 곡들조차 다른 연주자들의 곡과는 분위기부터가 남다르고… 물론 내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카모토의 나이가 이제 63세이고 음악 인생만 40년이라서 모든 것을 알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최근에서 알게 되는 사실도 많다. (웃음) 

Q: 최근에 있었던 <UTAU> 필름기그 진행과 관련해서 이야기 해달라. 
김: <UTAU> 앨범은 일본 현지에서 2010년에 출시되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카모토와 싱어송라이터 오누키 다에코(大貫妙子)의 프로젝트 앨범으로 사카모토의 피아노와 다에코의 노래, 딱 두 개의 악기만 담긴 정적인 음반이다. 앨범 발매 후 일본 투어가 있었는데 이를 기록한 영상을 토대로 진행한 감상회였다. 

<UTAU>의 국내 라이선스는 음반사 씨앤엘뮤직을 통해 2013년에 나왔다. 사실 이번 감상회는 진행에 앞서 고민이 있었다. 사카모토의 다른 음반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데다 영상 중간에 토크가 엄청 많아서 다른 때보다 작업량이 유독 많았기 때문에. (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과거 음악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쨌든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름이 들어간 프로젝트였기에 니즈가 있다고 생각해서 진행했다. 이번 이벤트부터는 장소는 물론 홍보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다변화를 주려고 했다. 덕분에 일이 더 많아졌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다. 

Q: 감상회의 다변화라고 한다면? 
김: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감상회를 오래 했으니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도 반경을 넓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감상회 때부터는 소셜모임 서비스 여가상자와 함께 진행했다. 여가상자는 바이럴을 비롯한 홍보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라서 먼저 요청을 했다. 여가상자의 주 프로그램들이 개인 여가생활과 정적인 취미 활동 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우리 감상회와 잘 맞을 것 같았다. 여가상자와는 시작부터 장소 섭외, 바이럴까지 함께 진행했다. 

이번 <UTAU> 감상회는 이례적으로 4월 한달 동안 합정 허그인, 가산디지털단지 무중력지대 G밸리, 홍대 살롱드팩토리. 이렇게 총 3곳에서 진행되었다. 앵콜로는 5월 23일에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한번 더 했다. 앞서 말했듯이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고 다양한 데이터와 피드백도 얻을 수 있었다. 신청자의 연령층과 성별, 인원 수 등… 다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참고가 되는 자료들이다. 

Q: 감상회는 언제부터 했었나. 
김: skmts_kr로 활동 하던 중에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처음 시작했다. 학생 때부터 스터디하려고 자주 들른 곳이었다. 그렇게 오며가며 하면서 살롱드팩토리의 김우성 대표님과도 인연이 닿았고… 나중에 이런 기획 있는데 어떠시냐고 여쭤봤더니 꽤 관심 있어 하셨다. 평소 살롱드팩토리에서는 각종 문화 강좌는 물론 미디어 콘텐츠 관련 교육도 진행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색깔이 맞았던 것 같다. 이후부터는 살롱드팩토리의 북박이장처럼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웃음)

(사진제공 =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실제로 사카모토가 내한공연을 하면 동원되는 관객 수가 엄청 많다. 내한공연을 보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객도 있을 정도다. 애초에 그 관객들을 다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사카모토의 음악을 알려보자는 취지가 있다보니 지금까지 4년 동안 진행된 것이다. 

Q: 가장 기억에 남은 감상회는? 
김: 아무래도 이번에 했던 <UTAU> 필름기그다. 장소도 여러 곳에서 진행했고 고생도 많이 했다. 특히 무중력지대 G벨리에서 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살면서 가산디지털단지에는 처음 가봤는데 유동인구는 물론 상주인구의 평균 연령대에 놀랐다. (웃음) 무중력지대 G벨리의 담당자분들은 물론 감상회 참여자분들의 연령대도 비슷했고. 그런 가운데 지역 특성상 IT분야 특화지구이다 보니 상주하는 사람들의 생활 시간대, 주변 문화시설 존재여부 등 여러가지 알게되는게 많아서… 우리 감상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 무중력지대 G벨리도 좋았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하고 싶다. 

Q: <UTAU> 필름기그는 마치 사카모토의 공연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김: 거의 웬만한 감상회 때마다 풀타임으로 재생한다. 거기다 영상물의 품질도 나쁘지 않다. 영상 제작사 측에서도 차후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 발매를 염두하고 공연 실황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영상과 음향이 괜찮은 퀄리티로 제작됐다. 

Q: 감상회를 하다보면 결국 상업적인 부분에 직면할 것 같다. 
김: 앞으로 계속 하게되면 결국 이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작권 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다. (웃음) 원작자의 허락이 있어도 판례나 관리협회 차원에서 걸고 넘어지면 얘기가 또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해 관계가 많다. 현재 진행되는 이벤트는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일단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다 수익이 발생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대신에 합법적인 부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이 많다. 규모를 키운다는 가정 하에 어느 정도 선에서의 수익 처리가 적당한지 자문도 구하느라 바쁘다. 

(사진제공 =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Q: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도 감상회 계획이 있는지? 
김: 2년 안에 제주도에서 감상회를 하고 싶다. 제주도에 있는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공간도 알아보고 있고. 제주도가 휴양지면서 문화 관련 콘텐츠가 서울 만큼 활성화된 분위기는 아니다보니… 요조나 옥상달빛 등 인디뮤지션들이 제주도에 가서 공연을 종종 한다는데 그럴 때마다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반갑고 신선해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기획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Q: 이후도 감상회는 진행이 되는 건가? 
김: 일단 사카모토의 음악활동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YMO와 관련해서 준비를 할 것이다. 9월이나 늦어도 10월까지는. 원래 계획은 8월 쯤에 하려고 했는데 그 시즌에는 락페스티벌들이 모여 있는 관계로 힘들어서 미뤘다. 하반기 중이나 내년 초 중순까지는 하려고 한다. 나만 열심히 하면된다. (웃음) 계획은 항상 있다. 

Q: 해외의 사카모토의 팬들도 skmts_kr의 활동을 관심있게 보는 것 같다. 
김: skmts_kr의 SNS는 한국 계정임에도 불구하고 영미권 팔로워가 훨씬 많다. 가끔 이 사람들이 뭐 때문에 좋아요를 누르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웃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참사 당시에 사카모토의 무사 소식을 기다렸던 팬들이 들어온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이후에는 일본 내 정치권과 관련 있다. 여러번 일본은 자국내 시선을 돌려 보고자 동북 아시아 패권을 주장하는 등의 의제설정을 진행해 왔는데, 이 점에 대해서 사카모토가 문제제기를 해왔다. 워낙 상식적인 반론이라서 skmts_kr도 여러번 공유했다. 그런 공유 기록을 보고 팔로워들이 차츰 늘어난 것 같다. (웃음) 어쩌다보니 skmts_kr의 입장이 정치적으로 흐르는 듯 싶어서 걱정도 들었다. 

Q: 그럴 때면 skmts_kr의 입장이 미묘했을 것 같다. 
김: 사실 제일 겁났던 것은 그가 우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조사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생각하는 우익은 아니다. 사카모토는 일본 출신이면서도 미국 뉴욕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았고, 해외 공연을 자주 다니다보니 세계 각지에 친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청년 시절에 백남준을 동경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함께한 이탈리아 출신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Bernardo Bertolucci) 감독, 또 평소 본인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로는 브라질 출신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ônio Carlos Jobim)을 꼽기도 했으니까. 아울러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당시 불거졌던 센카쿠 댜오위다오 분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당시 그의 머릿속에 있는 중국인 친구가 생각이 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각 나라 별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해당 국가의 지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식이다. 직접 연락해서 현지 분위기나 견해를 물어보기도 한다고. 



Q: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가니까 발언력이 대단한 것 같다. 
김: 사카모토는 80년대에 YMO의 멤버로서 영미권에서 활동하면서 빌보드 핫샷 데뷔를 했다. 그때 YMO의 곡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으니까. 또 당시 일본의 경제력이 급부상 하던 시절에 때 마침 미국에서 들려온 일본 출신의 YMO의 성공 소식은 단순히 음악적인 부분을 넘어서 일본 내까지 많은 이슈가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사카모토의 개인 커리어에서 보면 아카데미와 그래미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회장에서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했다. 그 모습을 일본의 기성세대들은 쭉 봐왔기 때문에 최근 그의 어떤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 비판보다는 일단은 듣고 보는 자세로 지켜보는 것 같다. 최근까지도 일본에서는 소셜테이너(Socialtainer)의 개념이 전무했기 때문에 사카모토를 비롯하여 무라카미 류 등의 문화계 인사가 하는 쓴 소리에 당황하면서도 신선하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세계 근현대사는 물론 해당 인물들에 대한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웃음) 

Q: 사카모토와 만난 적은 있는지. 
김: skmts_kr로서 2012년에 트리오 공연 종료 후 무대 뒤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내 소개를 했더니 그는 “잘 부탁드린다” 라고 답해줬다. (웃음) 사카모토 뿐만 아니라 공연의 유스트림 방송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분과도 인사했다.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웹상에서 여러차례 멘션을 주고 받아서 그런지 처음 만나는데도 익숙하고 반가웠다. 

Q: skmts_kr를 하면서 어려운 점? 
김: 최근에 알았는데 내가 하는 역할이 꽤 많더라. (웃음) 본업과 skmts_kr의 활동을 병행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고. 직장 다니는 출퇴근 시간만 왕복 세네 시간이 걸린다. 시간 관리의 필요성도 느끼고… 이런 가운데 일은 일대로 진행하려니 애로사항이 좀 있긴 하다. 그래도 자문을 구하면 생각치도 못하게 많은 대답을 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운 좋게 항상 나타나더라. (웃음) 씨엔앨뮤직이나 살롱드팩토리, 여가상자 같은 곳이 그렇다. 

(사진제공 =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

Q: skmts_kr를 하다보면 욕심이 날 것 같다. 
김: 현재로는 사카모토가 한국 와서 공연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우리 웹사이트에 들어와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채널 용도로 만족한다. 음악감상회도 사카모토의 음악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차후 있을 내한공연에 관심을 갖게끔 하는 것이 목표니까. 물론 지금껏 내가 고생하니까 알아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웃음) 적어도 이 이상 더 나설 이유는 없다고 본다. skmts_kr는 처음부터 류이치 사카모토의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이 전부니까. 

Q: 앞으로의 목표는, 그리고 10년 후에 뭐하고 있을 것 같은가? 
김: 개인적으로는 잇뮤직크레이티브(it music creative) 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해당 조직 내에서는 피쳐 에디터라는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1인 스타트업 겸 미디어 출판 회사인데 직함이 피쳐 에디터인 이유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서 그런 거고. (웃음) 윤상씨의 인터뷰 때부터 잇뮤직크레이티브의 이름을 처음 올렸다. 현재 잇뮤직크레이티브는 인터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매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skmts_kr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도 처리할 수도 있을 것 같고… 10년 뒤에는 그런 식으로 잇뮤직크레이티브를 좀 더 현실적인 방향으로 키우고 싶다. 이런식으로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지금처럼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웃음) 


(부록) skmts_kr의 류이치 사카모토 추천음반 



Ryuichi Sakamoto – Three (2012) 
오랜 음악적 동료인 쟈키스 모렐렌바움과 새로운 트리오 편성을 위해 진행된 공개 오디션에서 발탁된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주디 강(Judy Kang)과의 합작 앨범이다. YMO는 물론 류이치 사카모토 개인의 지난 작업들이 트리오 3중주로 편곡 레코딩되어 있다. 과거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편성과는 다르게 느리고 여유로운 호흡이 느껴진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메인으로 하면서 동시에 클래식 작업에서도 유유자적하는 노련미와 담담함이 느껴진다. 40년 가까운 음악 경력자의 앨범답다. 국내에는 씨앤엘뮤직이 정식 라이선스 출시했다. 추천곡은 ‘Happy End’, ‘The Last Emperor’. 



Ryuichi Sakamoto / Illuha / Taylor Deupree ‎– Perpetual (2015) 
지난 2013년 일본 야마구치 아트센터 1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치 작업 의 개막 이벤트 중 녹음된 실황 앨범. 류이치 사카모토와 미국의 전자음악가 테일러 듀프리(Taylor Deupree), 일본의 밴드 일루하(Illuha)의 퍼포먼스가 담겼다. 장르로 치면 노이즈/엠비언스 계열의 전자음악이다. 2001년 앨범 이후 노이즈/엠비언스계 사운드 디자인에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류이치 사카모토의 여유있는 스케치, 테일러 듀프리와 일루하의 음악적 터칭이 돋보이는 앨범. 이질감 있는 불편함 보다는 편안하고 따스한 기운이 두드러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구입할수 없지만 테일러 듀프리가 직접 운영중인 레이블 12k의 홈페이지에서 쉽게 구입할수 있다. 


사카모토 소셜프로젝트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