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4일 월요일

[인터뷰] 이아립 - 2016-04-24

이아립: 작지만 당신을 깨우는 목소리였으면 BY 김종규 - 2016-04-24

*원본 링크: http://webzinem.co.kr/4051


이아립 2016.04.04. ©Jongkyu Kim 


올해 초 다섯 번째 솔로 앨범 [망명]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이아립은 언제나 남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존재다. 한 때 유행했던 모던록 밴드 ‘스웨터’에서는 프론트를 맡았었고, 혼자만의 레이블인 ‘열두폭 병풍’을 만들어 음악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했으며, 동료 음악가 이호석과 함께 혼성 듀오 ‘하와이’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디자이너, 영화 음악감독, 라디오 디제이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망명] 앨범을 함께 작업한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와 여러가지 공연을 해오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16일에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각각 새 앨범을 발표한 이아립과 이호석의 공연이 있었다. 나는 이날 개인사정으로 늦는 바람에 공연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싸인이나 받자는 마음에 앨범을 들고 싸인회 중인 이아립에게 갔다. 이아립은 깊고 명료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공연 잘 보셨어요?” 나는 그냥 공연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좋으셨어요?” 이아립은 지긋이 나를 쳐다보며 두 번째로 물었다. 그 말에 나는 차마 공연이 좋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어른에게 거짓말을 고백하는 아이처럼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처음에는 황당해 한 듯 보였지만 곧 이아립은 상냥하게 “다음에 꼭 공연장에서 만나요” 라고 했다. 

며칠 뒤 나는 대림미술관의 D PASS 공연에서 이아립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아립은 잔잔한 울림과 여운, 따뜻하고 인간적인 노래로 관객들을 흠뻑 빠져 들게 만들었다. 나 역시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감상적인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이아립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4일 저녁 8시에 연희동 카페 마호가니에서 진행되었다. 이 기록은 이아립과 나눴던 특별했던 시간을 제대로 살리고자 대화체로 서술한다. 


이아립과의 인터뷰 (사진출처 = 이아립 페이스북) 


Q: 사실 스웨터 시절부터 이아립 씨의 팬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그때 공연이 좋았냐고 물어보면서 저를 살짝 쳐다보셨는데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 시원하게 그 자리에서 이야기했죠.
아립: 제 눈빛이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눈빛인가 보군요. (웃음) 

Q: 이번 인터뷰에서는 저처럼 예전 스웨터 시절의 이아립 씨의 모습만을 기억했던 사람들에게 지금의 이아립 씨의 소식을 알리고 싶습니다.
아립: 한동안 이아립을 포털사이트에서 치면 연관 검색어에 스웨터나 관련 단어들이 안 떴어요. 근데 이번 [망명] 앨범이 사람들에게서 스웨터의 기억을 다시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되게 반가워요. 옛날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도 들고. 

Q: 얼마 전 단독 공연 끝나고 한 팬이 스웨터 EP 앨범을 들고 가서 사인해달라고 했다는 제보도 있었어요.
아립: 예, 맞아요. EP를 누가 들고 왔었어요. [Zero Album Coming Out…]이 딱 나와가지고 ‘헐… 대박’ 했죠. 유물을 들고 오셨더군요. (웃음) 

Q: 혹시 너무 옛날 일이라 잊고 싶은 과거는 아니죠?
아립: 전혀 아니에요. 스웨터는 제가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시작과 기초인걸요. 덕분에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때 음악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고 아직도 좋아해요. 스웨터는 저의 일부인 걸요. 

Q: 그러면 기왕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스웨터가 해체 됐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활동 재개할 가능성은 있나요?
아립: 멤버들하고 연락이 끊어진지는 오래 되었어요. 베이스를 쳤던 신지현 씨 하고만 연락하고요. 아마 다시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약간이지만 아립 씨의 입으로 스웨터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좋네요.
아립: 그러니까요. 저도 고향집 이야기 듣는 것처럼 좋아요. 




Q: 그동안 자체 제작으로 앨범 작업을 해오다가 작년부터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와 함께 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인디 레이블 중에서도 왜 일렉트릭 뮤즈인가요? 또 혼자서 음악할 때와 다른 점이 있던가요?
아립: 이번 앨범 제목이 [망명(亡明)]인데 ‘빛이 사라지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일렉트릭 뮤즈로 망명(亡命)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혼자서 음악을 할 만큼은 했거든요. 홀로 앨범 전체 작업을 하다보니 제 틀 안에 갇히는 것 같았고 조언자가 필요했어요. 음악적으로 멋진 프로듀서도 필요했구요. 거기에 가장 걸맞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분이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씨였어요. 친분을 떠나서 그 분이 만들어내는 음악과 음반에 대한 이상, 가치관들이 저와 잘 맞았어요. 그러다보니 그곳에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었어요.
이번에 [망명]을 만들면서 누군가와 함께 작업을 해보는 일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어요. 다른 뮤지션들은 시작부터 겪는 일일텐데… 저는 이제서야 처음 겪어서 되게 색다르고 신선했어요. 그 경험들이 너무 좋았구요. 앨범도 그렇지만 앨범이 나오기까지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드라마라면 어떤 것인가요?
아립: 어떤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동안 어떤 깨달음을 얻는 일이죠.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혼자서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깨닫는 것들일텐데’ 라며 혼자 생각하고. (웃음) 음악을 만들면서 홀로 모든 과정을 겪다보니 놓치고 있었던 수많은 지점들이 보이더라구요. 저로서는 되게 큰 것을 발견하게 된 거죠. 

Q: 이번 앨범에서 일렉트릭 뮤즈 식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작업은 재미있었나요?
아립: 네, 재미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이번 앨범이 나오게 된거죠. 특히 프로듀서를 맡은 홍갑 씨는 제가 갖고 있는 음악에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멜로디와 노래에 하나의 색을 입혔어요. 그것을 보면서 곡을 쓴 저보다도 훨씬 이 음악과 앨범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생각을 했어요. 역으로 되게 많이 배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도 앞서 말한 드라마에 포함되는 일이었죠. 

Q: 앨범 [망명]은 1년간 쓰여진 곡들 중에 쓰고 지우면서 완성 되었다고 들었어요. 선정된 6곡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아립: 이전의 저의 솔로 앨범들의 경우, 먼저 노래를 만들고 나서 제목을 달았고 당시에 제가 느꼈던 느낌과 비슷한 맥락인 것들로만 묶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컨셉부터 정하고 노래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결정하고 나서 쓰기에 들어간 곡도 있었구요. 단초(端初)가 된 곡은 ‘계절이 두 번’이었어요.
이어서 앨범 컨셉은 이전까지의 이아립이 드러내지 않았던 어두운 면에 집중해서 만들어 보자는 쪽으로 잡았죠. 기쁨 보다는 슬픔, 상실, 사랑보다는 이별 쪽에 포커싱을 맞춰서 ‘다크사이드 오브 이아립’ 느낌으로 잡아보자. 해서 많은 노래들 중에 그런 느낌의 곡들만 고르게 되었죠. 

Q: [망명]은 요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 같지가 않아요. 예전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 방식처럼 들렸는데 의도한 건가요?
아립: 제가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있을 거구요. 김민규 씨가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프로듀싱 하신 것 같아요. 애초부터 그런 올드한 느낌을 지향한 것도 있었어요. 그때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것도 있구요. 요즘의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쉽게 찾아서 들을 수 있고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들을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번 음반에는 그런 것을 담지는 않았어요. 그런 편리함과 가벼움과는 반대되는 느낌의 무거움이라든가, 진지하고 깊게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음악들을 하고 싶었어요. 

Q: 첫 곡 ‘1984’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명 소설을 읽고 지금 현실에 빗대어 쓴 곡이라고 하는데 의미심장한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더군요. 곡이 끝나가면서 “우리가 뱉어버린 말의 악취가 여기 이 곳에 진동하네 음” 하고 말 끝을 흐리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립: ‘1984’에서 “그래봤자 뭐해. 세상이 온통 지옥인데”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이 부분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하는 누군가들이예요. 저는 그런 말이 너무 싫어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핵심을 흐리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그에 빗대어 ‘1984’는 SNS상의 너무도 많은 말들에 대한 노래예요. 무수히 많은 검지들로 쓰여진 말들은 때로는 하나의 진실들을 가리죠.
곡의 마지막에는 ‘우리가 뱉어버린 그런 말들의 악취가 진동하는 이 시간’에 대한 노래를 합니다. 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사실은 그 악취를 경멸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모르게 똑같이 내뿜고 있을 거란 말이죠. 그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이아립의 5번째 앨범 [망명] 


Q: 앨범 [망명]의 시작이 된 곡 ‘계절이 두 번’에서 계절은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요? 언제 쓰여졌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립: ‘계절이 두 번’은 진짜 물리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가을부터 쓰기 시작해서 겨울이 지나 봄에 완성이 된 거죠. 그 해 가을과 겨울에 대한 쓸쓸한 소회(所懷)를 담은 곡이예요. 

Q: 앨범에서 가장 밝지만 지난 추억을 곱씹는 듯한 느낌인 ‘그 사람’과 헤어졌던 연인의 새 애인에게 뼈가 있는 말을 하는 듯한 ‘조언’은 절묘하게 이어집니다. 이 두 곡들이 실제로도 이어지는 건지 궁금합니다.
아립: ‘그 사람’은 한참 전에 쓰여진 곡이예요. ‘조언’은 이번 앨범 작업하며 쓰여졌는데 묘하게 딱딱 붙어서 수록했습니다. 

Q: ‘원더랜드’는 아립 씨의 노래 중에서 드물게도 강한 단호함이 느껴지는 곡 같아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픔과 후회를 노래하는 것인가요?
아립: 후회는 아니고요. 살면서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길에 서있는데 갑자기 다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차라리 내 앞에 있는 모든 풍경들이 다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심정과 비장한 느낌으로 노래 녹음을 했어요. 이 곡을 녹음할 때 시간은 밤 시간이었구요. 일부러 가을과 겨울의 느낌으로 톤을 만들어서 녹음을 했어요. 

Q: 마지막 트랙 ‘끝’은 지난 시절과의 안타까운 작별 인사를 보내는 노래인 만큼 애절한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 바로 첫 곡 ‘1984’와도 무척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요. 이때야 비로소 [망명] 앨범이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앨범을 만들 때부터 의도한 것입니까?
아립: 저는 항상 끝과 처음은 연결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 말고도 전작들을 만들었을 때도 끝과 처음을 연결시킨 지점이 있는데요. 앨범을 끝까지 듣고 처음부터 다시 들으시라는, 저만의 권유죠. 그래서 앨범 곡 배치를 그렇게 했어요. 

Q: 이번 앨범 가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람, 세상, 시간, 계절, 사랑, 사람, 나인 것 같습니다. 원래 이 단어를 좋아하세요?
아립: 아마 다른 뮤지션들도 특정 단어들을 많이 쓸 거예요. 저도 새로운 것을 하려면 앞으로 단어 개발을 해야하는데. (웃음)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단어이긴 해요. 

Q: 앨범 제목이 굳이 망명(亡明)일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풀어서 ‘빛이 사라지다’로 지었어도 될텐데 말이죠.
아립: 저한테는 이 망명이란 단어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막막하면서도 앞으로 살기 위해서 어디론가 가야한다는 절박함, 칼처럼 자신의 날을 세우고 싶었구요. 그런 단호한 감정이 있던 차에 눈에 들어왔죠. 예전에 망명한 이 시대, 망명한 이 밤, 같은 느낌의 단어 쓰임을 보며 되게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계속 혼자서 작업하다가 일렉트릭 뮤즈로 갔으니까. 말 그대로 망명(亡命)이기도 하죠. 

Q: 앨범 소개에서 [망명]을 준비하며 ‘시간의 흔적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했다’고 했어요. 어떤 것이 긍정일까요?
아립: 주변 친구나 지인들이 이 앨범 나오고 나서 무슨 일 있었냐, 어려운 일 있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두운 분위기의 앨범이 나와서인지 그런 반응을 하더라고요. 근데 사실은 그 어떤 때보다 밝은 마음으로 작업을 했어요. 지금처럼 환할 때 불을 끄면 처음에는 안 보였다가 나중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새로운 빛을 찾아가는 희망의 느낌… 어두울 때야 말로 어두운 것을 바로 직시해야만 정말로 빛을 찾거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긍정들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Q: 3월 6일에 홍대 벨로주에서 있었던 단독 공연은 어땠나요?
아립: 공연 1주일 전부터 멘트 때 할 콘티를 짰어요. 이때는 무슨 말을 하고, 뭘 해야 하고, 또 붙이고… 근데 그러면서 “오늘 너무 긴장되네요”, “너무 떨려요” 같은 말을 넣은 거예요. 막상 그때는 안 그럴 수도 있는데도 멘트 때문에 정말로 그렇게 되버렸어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요. 멘트를 만들면서 긴장하는 연습까지 해버린 거죠. 편안하게 유연하게 하고 싶었는데… 제가 제 스스로의 발을 건 것만 같은 느낌이라 그 점이 아쉬웠네요. (웃음) 그렇지만 즐거웠구요. 한 석달만에 하는 공연이었는데 오랜만에 해서 마치 처음 공연하는 것 같았어요. 1부와 2부를 나눠서 했는데 1부는 보컬과 기타 한대, 피아노 한대. 그렇게 제가 그동안 했던 느낌으로 진행했어요. 2부에서는 밴드셋으로 공연을 했는데요. 밴드를 했던 시절, 스웨터를 기억하게 하는 공연이었구요. 그래서 아주 남다른 느낌이었죠. 좋았어요. 




Q: 최근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움트네, 봄’ 같은 곡은 앨범 [망명]이 끝나고 쓰여진 곡이라고 들었어요. 그런 곡이 더 있나요? 그 외 [망명]에 실리지 못한 곡들을 언젠가 다른 데서 들을 수 있을까요?
아립: 네, 그럼요. 그중에서 살아남고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언젠가 새로운 색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움트네, 봄’의 경우는 다른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라 녹음까지 마쳐서 곧 음원으로도 나올 거구요. 봄을 노래하니까 요즘 듣기에 잘 어울릴 거예요. [망명]에 수록된 곡들이 깜깜한 사진이라면 ‘움트네, 봄’은 희망적인 빛을 노래한… 그 다음 사진을 그려볼 수 있는 곡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 공연 할 때 자주 끼워 넣어서 불렀던 것 같아요. (*[숨 (SUM∞) 여섯 번째 그린플러그드 공식 옴니버스 앨범]에 수록) 

Q: 아립 씨는 그동안 굉장히 많은 공연을 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을까요?
아립: 사실 저는 항상 다음 무대만 생각해요. 가장 좋은 공연은 끝나고 나서도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공연이예요. 공연 때는 언제나 최선을 다 하고 기분 좋게 끝내야 하죠. 그럴 때는 늘 깔끔하게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금방 다 잊어 먹어요. 근데 공연이 끝났는데도 뭐가 막 떠올라… 그러면 저는 밤에 누워서 진짜 이불킥하고 잠 못 자거든요. (웃음) 저한테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공연이예요. 그게 한달 후든 바로 내일이든, 저한테 있어 가장 중요하구요. 그래서 항상 다음 공연을 제일 기대하면서 공연 준비를 해요. 

Q: 이아립의 음악하면 사람들이 자연, 여행, 휴식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의식하고 음악을 만들어요?
아립: 저 자체가 나이브하고 나른하고 루즈해서 그런게 있나 봐요. 제 음악을 들으면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뒷일을 부탁해’처럼 뭘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 뭐가 이렇게 중요하니, 이러면서. 제가 약간 부추기는 것 같긴 해요. 제가 가진 어떤 느낌인 거겠죠. 

Q: 여행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갑자기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아립: 지금 당장이라면 일단 제주도에 갈 거예요. 꽃이 많이 피었을 것 같아요. 유채꽃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벚꽃은 좋아하거든요. 벚꽃 보러 가고 싶어요. 또 제주도는 바람도 너무 좋잖아요. 근데 여행은 누구랑 가느냐가 제일 중요한데… 그렇죠? 사실은 지금 그렇게 여행 갈 마음은 없어요. 왜냐하면 봄이 잖아요, 지천에 연두색 잎이고, 꽃이니까요. ‘됐다. 더이상 여행 갈 필요가 없겠다.’ 이 생각이 딱 들었어요. 

Q: 지난 솔로 앨범 네 장은 개인 레이블인 열두폭 병풍에서 나왔습니다. 한때 독립적으로 앨범 제작과 유통 등 모든 것을 해결해보고자 했다고 들었는데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립: 저 혼자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앨범까지 만들어서 유통까지 딱 하는 것. 그것이 가장 독립적으로 음악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회사에 들어가서 앨범 작업이든 무언가를 하게 되면 결국에는 분업을 하지만, 저 혼자서는 분업이 안되니까 그 모든 과정을 혼자 겪을 수 있게 되는거죠. 음악의 전 과정을 다 해보고 싶었어요.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팔고, 팔 때는 “저는 이걸 만원에 팔겠습니다. 그러니 얼마를 주십시요” 하는 딜도 하구요. 그런 과정을 다 알아보고 싶었어요. 뭐… 이젠 지긋지긋 하죠. 알만큼 충분히 알았어요. (웃음) 




Q: SNS와 이메일 주소에 ‘foreveryoungforeverblue’란 단어가 눈에 띕니다. ‘열두폭 병풍’의 의미도 궁금하고요. 또 열두폭병풍의 홈페이지 주소에서는 ‘sugarpaper’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들이 다 무슨 뜻인가요?
아립: 제가 어렸을 때는 페이퍼, 그러니까 잡지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나중에 독립잡지 <싱클레어>를 만들긴 했지만… 아무튼 페이퍼에 관심이 꽂혀 있었을 때 sugarpaper라는 도메인을 샀을 뿐이고요. 지금은 단지 열두폭 병풍의 도메인명일 뿐이예요. 열두폭 병풍은 개인의 그림과 이미지와 멜로디 같은 여러가지 것들을 채워보자는 의미로 만들었어요. 사실은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의 병풍도 함께 채워 넣고 싶은데 제가 살기 바쁘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네요. 그래도 한폭 한폭 채워가는 느낌으로 나중에 그 열두폭을 완성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리고 foreveryoungforeverblue는 제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 중 하나가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라는 영화배우 때문인데 그 배우를 보면서 느낀 문장이예요. 리버 피닉스는 20대의 모습으로 영원히 늙지도 않고 박제가 되었잖아요. 저는 젊음은 푸른빛이고 청춘은 푸른빛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젊고 푸른빛 안에 갖힌 영원함. 그런 뜻으로 지었어요. 

Q: 열두폭 병풍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여기서 나눠요’라는 글과 함께 이메일 주소가 전부더군요.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요?
아립: 홈페이지는 지금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곳 이메일 주소로 저에게 말을 걸어 주시면 제가 답변해 드려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처럼. (웃음) 그렇지만 정말 불편한 방식이죠. 메일을 쓰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고 메시지도 아니잖아요. 사실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기 보다는 그냥 홈페이지를 닫아 놓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때마침 라디오 디제이를 하다보니 하루에 할말을 전부 소진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그냥 홈페이지를 닫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그래도 다른 세상에 말 거는 느낌으로 들어오시면 성실하게 대답해 드립니다. (웃음) 

Q: 과거에 아이폰을 자주 활용하고 녹음하면서 음악을 만든다고 언급하셨어요. [세번째 병풍 – 공기로 만든 노래] 마지막 트랙 ‘패턴놀이’에서는 라이브 느낌을 주고자 아이폰으로 녹음한 음원을 덧입혔다고 들었어요.
아립: 네, 3집의 첫번째 곡 ‘흘러가길’도 걸으면서 나는 발걸음 소리에 맞춰 노래한 것을 녹음했었어요. 그때는 아이폰을 쓰니까 그런 활용들을 많이 했었고요. 이전에는 ‘음반을 굳이 주얼케이스에 넣어야 해?’, ‘음악을 왜 스튜디오에서만 녹음을 해야해?’ 그런 생각들을 해서 그런지 여러 시도들을 했어요. 음반을 시디 케이스가 아닌 테두리에 담아서 실로 엮어 만들기도 하고 했었고… 그런데 저를 소비하시는 분들은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더라고요. 그즈음부터 여러가지 작업들을 하면 할 수록 최대한 음반에 충실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자 했구요. 이번 [망명] 앨범 때 부터는 정말 음반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했어요. 이전 앨범에서 많이 쓰였던 잡음 같은 요소는 최대한 배재하고서 정말 음악만 집중하며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었죠. 그것을 일렉트릭 뮤즈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대림미술관 D PASS 인디 콘서트 중 ©Jongkyu Kim 


Q: 이아립 씨의 가사는 특별한 것 같아요. 가사는 어떻게 쓰나요? 책을 많이 읽으실 것 같아요.
아립: 책을 좋아하고 읽는 것도 진짜 좋아해요. 근데 그게 전부 제 가사로 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연두색으로 각종 기호들이 막 흐르잖아요. 저는 사람 안에도 그런 문장이나 느낌 같은 것들이 계속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언가를 보고 느낄 때나 경험에서 우러나오거나, 아니면 갑자기 발현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어떤 문장들이 흐르는 느낌을 받으면 캐치해서 가사를 써요. 저는 멜로디를 먼저 쓰고 가사를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우선 어떤 심상과 문장이 있어야 노래를 쓸 수 있어요. 아니면 노래랑 문장이 같이 나오거나.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는 가사가 먼저예요. 그래서 제 멜로디는 그렇게 화려한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게 쓰여진 가사를 읽어보면 문장 자체에 큰 울림이 느껴지는 문장이 많은데 제가 봐도 신기할 때가 자주 있어요. 또,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노래를 쓰는데 그 노래가 지금의 저보다 앞서 가는 거죠. 노래가 무슨 언령(言霊)이 되는 것처럼… 한 6개월 후의 일들을 미리 예언해주는 노래들이 있었어요. 생각이나 느낌들이… 그럴 때면 진짜 신기하죠. 

Q: 영화 <어머니>의 OST라든가, [이야기해주세요-두번째 노래들] 앨범에도 참여하셨어요. 두드러지진 않지만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그런 노래를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립: 관심이 없을 수가 없죠. ‘1984’ 같은 곡은 저의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사회적인 곡이죠.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 급속하게 안 좋아질 것 같은데, 음…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부터 어떤 의도나 계획을 갖고 곡 작업을 하진 않아요. 제가 생각해서 만든 노래가 그런 흐름의 틀에 맞았던 거겠죠. 

Q: 최근 새 앨범을 낸 이호석 씨와 공연을 자주 하시더군요. 함께 하와이로 활동을 해서 그런지 두 분의 음악적인 느낌이 닮은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아립 씨의 주변 친한 음악인들은 음악적인 느낌이 조금씩 비슷한 것 같네요.
아립: 아,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사람을 잘 본 거겠죠. (웃음) 아마 그들과 제가 비슷한 결이 있다면, 하나겠죠. 목소리가 별로 크지 않고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제가 실제로 물리적인 큰 소리를 힘들어 하거든요. 호석 씨 같은 경우에는 팀을 같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공연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다, 쟤랑 팀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잘 알아본 거죠. (웃음) 

Q: 최근에 눈여겨보는 음악인이 있어요? 새로 같이 음악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요?
아립: 사는 것에 급급해 하지만 인디 음악은 많이 들어요. 지금 음악은 정말 다양해졌어요. 제가 꼽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그중에서도 제일 부동의 1위를 차지 하시는 분은 김목인 씨예요. 바꾸고 싶긴 한데. (웃음) 그리고 제 앨범의 프로듀서였고 이번에 새 앨범을 낸… 신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홍갑 씨가 있네요. 정말 독특한 미성과 재미있는 생각을 가진 귀여운 친구인데. 음악은 또 되게 시원시원해서 반전의 매력이 있어요. 

Q: 이번 [망명] 앨범을 어머니에게 들려 드렸더니 너무 어두운 음악이라고 하셨다면서요. 오랫동안 음악을 하면서 가족에게서도 영감과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엄마’, ‘베로니카’ 같은 곡도 있고.
아립: “음악인이라면 좀 희망적인 것을 노래해야하지 않겠니?” 라고 하셨죠. 나도 그러고 싶어요, 엄마. 잘 될 거야 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웃음) 관계에서 느끼는 것들과 경험에서 느끼는 것들, 그 경험들이 바탕이 돼서 어떤 사유가 나오고 문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것에서 오는 울림이 크죠. 그런 애정을 갖고 있는 관계들이 더 울림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가족은 저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Q: 아립 씨의 곡 중에는 사랑 노래가 많아요.
아립: 어떻게 보면 다 사랑 노래인 것 같아요. 이번 [망명]도 그 사람에게서 이 사람으로 넘어가는 지난한 과정이랄까. ‘끝’은 “이 사람 손 잡아요” 하고 끝나잖아요. 항상 노래가 그런 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Q: 그러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연애를 할 때와 안 할 때 중 언제가 음악이 더 잘 되나요?
아립: 그것은 그때 그때 다른 것 같아요.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뮤즈가 되는 사람들이 있죠. 그 뮤즈가 연인인 사람도 있고 헤어진 인연인 경우도 있어요. 근데 연인인데 뮤즈가 되어 주지 않는 사람도 있죠. 

Q: 솔로로는 거의 포크 계열의 음악을 하는데 다른 장르에 도전할 생각은 있습니까? 가령 전자음악이라든가.
아립: 뿅뿅 사운드의 음악은 [두번째 병풍 –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에서 시도해보았어요. 저는 디스코 음악도 좀 좋아합니다. 근데 해보고는 싶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네요. 그래도 보사노바는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이아립의 음악을 해보고 싶습니다. 

Q: 아립 씨의 지난 인터뷰들을 보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션을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러한가요?
아립: 사실 제가 그렇게까지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예요. 다른 뮤지션들에 비하면 음악을 많이 알지는 못하고요. 대개 음악을 들으면 이 음악에서 저 음악으로 링크를 걸듯이 듣잖아요. 발라드를 듣고 있다가 신나는 곡이 듣고 싶으면 댄스를 듣고, 그 다음에는 록을 듣는다는 식으로요. 저는 그러다 가장 마지막에 듣는 음악이 보사노바거든요. 조앙 질베르토(João Gilberto),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쪽 음악이예요. 이 음악들을 들으면 저는 다른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 다른 링크를 걸 필요가 없는거죠. 몇 년 동안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보사노바가 그야말로 집 같은 느낌인데 언젠가 호호할매가 되면 그런 음반을 내보고 싶어요. 햇볕이 촥 내려쬘 정도로 쎈 여름에 나른하게 퍼져 있어도 괜찮은 그런 느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안에서만 느껴지는 삶의 치열함… 근데 듣기에는 되게 온유하고 편안하게 들리죠. 그 화성들이 정말 어마어마 하거든요. 다른 음악으로 굳이 갈 필요 없고 질림 없이 듣게 되는 음악인 것 같아요. 그만큼 보사노바를 좋아해요. 

Q: 작년에 했던 라디오 디제이 활동은 어땠어요?
아립: 그전에도 심야 라디오 방송 목소리 같다는 말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작년에 라디오 디제이를 하게 되면서 ‘드디어 내 자리를 찾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제가 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서 두 시간 내내 끊임 없이 말을 해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그 시간에 제 이야기를 들으러 오시고 말을 걸어주시는 사람들이 있어서 훈훈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서로 안부를 물으며 “오늘 콩나물 반찬에 뭐 먹었어요”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요. 꿈 같은 시간이었죠. 

Q: 책이나 영화를 많이 보실텐데 최근 본 것 중에서 추천할 만한 것들이 있나요?
아립: 영화는 <캐롤>을 너무 재미있게 봤구요. 책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란 책인데 페소아는 <페소아의 페소아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명(異名)으로 활동한 작가예요. 이름마다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떤 영향 아래 어떤 유년기 시절을 보냈으며 어떤 직업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지요.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펼쳤는데 친구를 만난 것만 같았죠. 때로는 저 자신과 이야기하듯,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는 것이 마치 소통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투명사회>도 추천합니다. 저자인 한병철 씨의 통찰력에는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Q: 오래된 독립잡지 중 하나인 <싱클레어>에서 디자이너로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여전히 참여하나요?
아립: 지금은 손을 놓은 상태고요. 시작에 있어서는 같이 했었죠. 그때는 지금처럼 독립잡지라는 명칭이 쓰이지 않을 때였으니 <싱클레어>가 거의 처음이었죠. 비교적 최근에야 독립잡지가 주목을 받는 경향이 생긴 거구요. <싱클레어>에서 디자인적인 시도는 다 시도해본 것 같아요. 

Q: 뮤지션이지만 생계를 위해서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디자인을 하나요?
아립: 디자인을 안 한지는 오래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한게 4집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앨범이었던 것 같은데. 딱히 디자인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는 앨범이예요.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이 없는 디자인이 좋아졌어요. 자기 자리에서 심플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마음을 끌었죠. 그렇게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안하게 되었어요. 이제 저는 온전한 음악인이네요. (웃음) 

Q: 오래 음악인으로서 살았는데 한국에서 음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립: 외국에서는 활동을 안 해봐서 비교할 수는 없네요. 그래야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근데 음악을 한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이란 것은 사실 없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장소가 한국이라거나, 지금 시대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제 말은 음악이 없다고 사람들이 죽는 것은 아니잖아요.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일종의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죠. 그 때문에 음악을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보고요. 




Q: 음악 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신촌과 홍대의 음악 관련 장소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아립 씨도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할 사람 중 하나 같은데요.
아립: 네, 맞아요. 그 중에서도 향음악사가 없어졌다는 것은 그 변화하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음악시장이 어렵기도 하지만 이제는 음악을 소비하는 시스템도 완전히 바뀐 거죠. 지금은 사람들이 음악을 잘 듣지 않고 그저 클릭 하나를 소비할 뿐이죠. 예전처럼 실제로 찾아 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되었잖아요. 쉼없이 변화하는 시스템과 산업을 통해서 언젠가 완전히 사어(死語)가 되어 버리는 것도 생기겠죠. 카세트 테이프며 CD며 음반사며… 

Q: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가 있었나요?
아립: 저는 기타 소리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피아노 소리도 좋아하지만 기타 줄이 띵- 하고 울릴 때… 그 선명한 울림처럼 조금의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공연을 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을 사람들과 나눴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욕심을 부릴 때 힘들어져요. 

Q: 뮤지션 이아립으로서 언젠가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아립: 말도 마요. 많죠. 일단 제일 가까운 데서 해보고 싶어요. 저의 집 앞이 마포 아트센터에요. 진짜 코앞이거든요. (웃음) 또 저의 집 근처에는 서강대도 있는데 거기에 메리홀이 있으니까 거기서도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가까운 데서부터 하나씩 점령해 나가고 싶어요. 

Q: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 것 같은가요? 
아립: 음, 저는 내일도 음악을 안 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아마 음악 안 했으면 어부가 됐을 거예요. 저 어렸을 때부터 꿈이 어부였어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웃음) 

Q: 지난 시절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해왔어요. 언젠가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지금은 어때요?
아립: 네, 그랬어요. 왜냐하면 저는 얘기하는 순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거든요. 저의 생각이나 감정, 심지어 제가 정의내리는 것들까지도요. 음악을 하고 행복한 순간 조차도 계속 변해요. 인터뷰를 하는 것은 어딘가에 글로 남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그것으로 나를 기억할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한 말들이 항상 두렵습니다. 

Q: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요?
아립: 전혀 모르겠네요. 살아 있을까? 우리 다 같이 살아 있을까? (웃음) 과연 살아 있다면, 모르겠어요.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심심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뭔가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네요. 

Q: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되나요?
아립: [망명]이란 앨범을 냈으니까 불러주시는 곳에서 공연을 할 거고요. 앨범과 관련된 모든 활동은 진짜 잘 할 거예요. 이번 앨범이 이아립의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업이었으면 좋겠고요. 앞으로 공연을 계속 하고 새 음반도 만들어야죠. 

Q: 2016년 현재의 이아립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립: 저는 사실 ‘1984’를 알람송으로 하고 사는데 아침에 “흔들리는 건…”하는 가사를 들으면서 깨면 진짜 정신이 번쩍 나거든요. 아침부터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노래하다니 서늘하잖아요. 근데 그냥 시끄럽다 이런게 아니라, 정신과 온몸의 세포들이 번쩍하면서 깨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당신을 깨우는 목소리였으면 좋겠네요. 누구보다 작고, 다른 가창력 있는 가수처럼은 못 부르지만. 작지만 당신을 깨우는 목소리였으면 좋겠네요. 


이아립 (Earip) 

열두폭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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