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6일 화요일

[인터뷰] 이랑 (2부) - 2016-12-06

이랑: 헬조선을 살아가는 이랑의 세계 (2부) BY 김종규 - 2016-12-06

*원문 링크: http://webzinem.co.kr/5648


이랑 2016년 9월 21일 ©jongkyukim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위 질문은 이랑의 곡 ‘신의 놀이’의 도입 가사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부쩍 ‘신의 놀이’가 귀에 맴돈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 마치 신의 장난스런 놀이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게 된 탓일까. 

이랑은 참 다재다능하다. 그는 2012년 맥북 한 대로 녹음해서 만든 데뷔 앨범 [욘욘슨]을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진 뮤지션이다. 만화가로서 <이랑 네컷 만화>, <내가 30대가 됐다>를 발표했고, 영화감독으로서 <유도리>, <변해야 한다> 등을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 <게임회사 여직원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올해 이랑은 음악가로서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에 발매된 정규 2집 [신의 놀이]는 신곡 10곡이 수록된 앨범으로 책과 음악 다운로드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솔직하게 쓰여진 글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를 노래하는 그의 노래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의 음악팬들에게까지 큰 울림을 선사하고 있는 중이다. 또,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관객 앞에서 매번 다른 음악가와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던 공연 <신곡의 방>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랑이라는 ‘사람’이 무척 궁금했다. 지난 9월 21일 망원동 작업실에서 이랑을 만날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음악가 이랑의 활동을 중심으로 다루고, 2부에서는 영화감독 이랑과 그 이외의 면면을 다루기로 한다. 





“영상을 만드는 이랑” 

Q: ‘신의 놀이’ 뮤직비디오를 제작 중이라고 들었다. 
이랑: 2년 정도 전부터 사전작업을 시작했다. 이 얘기는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집에 아마 실릴텐데… 22살 때, 그러니까 9년 전에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의 기억이 바탕이 되었다. 그때 좁은 주방에서 낮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냉장고를 열고 뒤에 있는 오븐을 열고 피자를 만들고… 그런 일을 계속 하다가 어느 순간 반복되는 동작의 무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로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곤 했다.
이번 [신의 놀이] 앨범 작업하면서 ‘평범한 사람’ 같은 곡이라든가… 그런 개별 인간들에 대한 관심이 들어간 곡들이 만들어지고 지난 생각들이 계속 디벨럽(develop)되었다. ‘나는 이런 춤을 추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일하면서 무슨 춤을 추나. 그런 것을 수집을 하자.’ 그렇게해서 시간 날 때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평소 일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하는 동작을 도구 없이 마임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배틀을 잡거나, 빵을 만들고, 요리하는 모습… 과학자, 의사, 한복 디자이너, 여자, 남자를 만나면서 동작을 모았다.
그리고 작년에 쌀쌀할 때, 지난 뮤직비디오 ‘프로펠러’ 때 같이 안무를 짰던 친구와 그 동작들을 분석하면서 춤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번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나는 왜 알아요’로 정하려고 했다. 내 생각에 ‘프로펠러’와 같은 네 박자고 춤으로 메시지를 넣기에도 잘 맞는 것 같았으니까. 근데 이번에는 세 박자로 해보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고, 마침 ‘신의 놀이’가 쿵짝짝 하는 왈츠 박자라서 좀 어렵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길래 그걸로 결정했다. 안무 작업은 ‘프로펠러’ 때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랑 시간을 갖고 연습하고 해서 너무 재미있었다. 촬영은 끝났고 조금씩 편집하면서 만들고 있다. 11월 중에 나오지 않을까. (11월 10일 공개되었다) 

Q: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랑 씨는 일을 리드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이랑: 17살 때부터 일을 했다. 잡지 페이퍼에서. 그때는 항상 애기고 어디서든 막내였다. 회사에 들어가면 언니들이나 현역을 제대한 오빠들이 많아서 그분들이 밥을 사줬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보고 다 언니라고 그러고 누나라고 그러고 있더라. 이제는 감독님이라고 부르고. (웃음)
이번에 밴드를 할 때도 어떻게 하지… 이러다가, ‘어차피 다 동생이고 이제 난 막내가 아니야, 나는 어른이야, 여기서는 리더야, 이떻게든 해보자’ 했더니 일이 잘 진행되고 편하더라. (웃음) 뮤직비디오 작업하며 무용수들이랑 같이 할 때도 고민하면서 시간을 끄느니 그냥 리드 해버리니까 훨씬 손쉬웠다. 특히나 이건 내 작업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영상 작업 때는 스탭들 중에서도 어린 편인데 내가 결정을 해야했다. 역시 리드해보니 순탄하게 잘 진행이 되고 재미있었다.
어떤 때는 그런 점이 엄청 피곤하다. 왜 나는 항상 뭘 하자는 사람인가. 왜 내가 먼저 하자고 안 하면 아무도 안 하고 아무도 먼저 연락을 안 하고… 왜 그럴까? 그래서 피곤했을 때가 잠깐 있었다. 근데 그건 어차피 잠깐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다 연락해서 보자고 한다. 가끔은 나도 누가 먼저 연락해주고 끌어주었으면 할 때가 많이 있다. “이거 어때요?” 라고 누가 물어 봤으면…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어차피 다 내 작업인데 내가 안 하면 누가 해, 가 되는 거다. 

Q: 이랑 씨는 음악을 만들고 영상도 만든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을까?
이랑: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지. 혼자서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영상도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혼자 쓴다. 결국 시작할 때부터 혼자 작업하는 것은 똑같다. 이후부터 사람들이 많이 투입이 되는 것인데 되게 재미있다. 사람이 한 공간에 많이 모이면 그만큼 생기는 에너지도 많지 않은가. 콘서트를 크게 하는 뮤지션들이 엄청나게 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는게 그래서인 거고. 그런 무대에 대한 부담감도 장난 아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서 오는 반응을 즐기다 보니 무대의 맛을 못 잊는 것 같다. 그런 종류의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외롭고.
영상 작업은 공연이 아니다보니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지시하고 만들어 가면서… 진행될 수록 눈에 보이는 게 있는데 그런 것이 재미있다. 공동으로 하다보니 역할극하는 기분도 든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도 많이 생긴다. 빨리 찍어야 하는데 누가 아프다던지, 지진이 났다던지, 누가 화가 났다던지, 누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던지, 하는 그런 변수들이 엄청 많다. 그때마다 빠르게 판단을 하고 다같이 상황을 바꿔 나가다 보면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잘하는 게 판단을 잘 하는 거다. (웃음) 




Q: 최근 공개된 <집단과 지성>의 예고편도 그렇고, 예전에 감독 연출한 <변해야 한다>, <유도리>, <주 예수와 함께> 등과 같은 작품들이 흥미롭다. 이랑만의 유머코드가 들어간 점이라던가, 지인들이 나온다던가. 작품끼리 어떤 연결점도 있는 것 같다.
이랑: 살아있으니까 자꾸 재미있는 생각이 나는데 계속 하고 싶고 만들고 싶다. 만드는 중에 제작비가 떨어지기도 하고, 투자를 받아서 상업물을 만들기도 하고… 그렇게 또 친구들하고도 이것저것 한다. <집단과 지성>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영상 편집이 불가능해서 1년 동안 고생하며 이거저거 해보다가 지금 약간 해탈한 상태로 예고편만 작업하고 있다. 

Q: <집단과 지성>은 예고편만 공개된 상태인데 어떤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는가?
이랑: 찍는 도중에 슬레이트를 안 쳐서 영상의 녹음과 비디오가 맞지 않는다. 슬레이트를 안 치면 영상과 사운드 파일을 붙이는 부분이 지점이 안 생겨서 붙이기 어렵다. 영상파일이 한 트랙, 오디오 한 트랙만 있으면 붙일 수 있는데… 문제는 카메라를 3, 4대로 찍고 그래서, 그걸 다 찾아야 한다. 전체를 모으면 파일만 몇 백개가 되다보니 전문 편집기사를 찾아가도 어렵다더라. 그들도 한달 이상 노가다를 뛰어야 붙는다고 하고.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일단 예고편에 쓸 것은 찾아서 그 부분만 소리를 찾으면 되니까 어떻게든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을 생각 중이다. 이대로는 아무래도 본편이 나오기는 힘들어서 예고편 + 시나리오집 + 추가 정도의 구성으로 된 결과물을 생각하고 있다. 본편을 제외한 주변 구성만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본편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시도하려고 한다. 아예 결과물을 안 내는 것은 내 성질에 못 참는다. 어떻게든 완성을 하고 싶다. 

Q: 이랑 씨의 영상 작업에 영향을 준 인물은?
이랑: 기타노 다케시(Kitano Takeshi), 토드 솔론즈(Todd Solondz ), 래리 데이비드(Larry David)라는 미국 작가 겸 연출가이자 배우인 사람을 좋아하고, 루이스 씨케이(Louis C.K.), 우디 앨런(Woody Allen)도 좋아한다. <스튜디오 60>와 <웨스트 윙> 작가이자 영화 <소셜네트워크>의 각본가 아론 소킨(Aaron Sorkin)도 되게 좋아한다.
항상 작업할 때는 토드 솔론즈, 래리 데이비드, 루이스 씨케이 같은 풍으로 하고 싶다. 작가 본인이 출연해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대로 이야기를 풀고 하는 식이다 보니까 마음에 든다. 우디 앨런과 아론 소킨의 경우는 좀 더 고급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이창동 선생님의 경우는 그냥 겁나 리스펙트하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처럼은 내가 죽었다 깨도 못할 것 같다.

Q: 앞으로 이랑 씨 본인이 영상 작업에 직접 출연할 수 있을까?
이랑: 학교 다닐 때는 많이 했었다. 지금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포기해야 하는게 많다. 일단 카메라 뒤에 못 있으니깐 놓치게 되는게 너무 많아서 먼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에 <집단과 지성>에 출연하면서 놓친 게 많다. 실수도 그렇고. 배우로 출연하면 감독으로서의 컨트롤을 할 수가 없으니까,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면서 관리해줄 수 있는 동료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나도 여유가 생겨서 배우로 출연하면서 감독 역할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Q: 예전에 했던 인터뷰 중에 “노래는 일기와 자기 치유에 가깝고 영화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미래다”는 언급을 했었다. 지금은 음악과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랑: 음악은 진짜 하고 싶을 때만 하고 안하고 싶을 때는 아예 안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야기를 짜는 것은 항상 하고 싶으니까, 그러다보면 더 하고 싶을 때가 있는 거라서, 나중에 어떤 노래를 만들 수도 있고 부르고 싶을 때가 생기겠지. 그런데 영화는 계속 하고 싶다. 이대로 40대가 된다고 했을 때 영화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나 만들고 싶은 장면 같은 것이 계속 떠오른다. 내가 구성한 이야기를, 그 세계를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 등 모든 감각들을 집결시켜 보여줄 수 있으니까. 반면 음악은 주로 청각에 의존하다보니 듣는 사람 각자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르지 않은가. 내가 의도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와 각자의 감성에 젖게 할 수 있는 음악. 그 두가지를 종합하고 싶은데 어렵다. 




“말에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Q: 원래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가?
이랑: 음악을 누가 틀어주면 듣지만 스스로는 거의 안 듣는 편이다. 이동할 때 조금 기운이 떨어지면 멜론 같은 스트리밍으로 활기찬 아이돌 음악 같은 것은 듣는다. 최신 랭킹 1위부터 끝까지 다 듣고… 그치만 가지고 있는 음악은 거의 없다. 태양이랑 지드래곤이랑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라든가, 일본 친구들이 준 음악 몇 개 정도가 다고… 그것만 몇 년째 듣고 있다.
음악보다는 미국 스탠드업 코메디 음성 파일을 계속 듣는다. 좋아하는 코메디언의 음성 파일을 반복해가면서 듣고 길을 가면서도 듣는다. 되게 좋다. 미국의 코메디는 한국하고는 많이 다른데. 스탠드업은 코메디언 본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이 들어간, 유머러스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거라… 코메디언 본인의 인성에 따라 되게 차이가 많이 난다.
예를 들어서 티그 노타로(Tig Notaro)라고 하는 여자 코메디언은 유방암에 걸렸는데 절개 수술을 해서 양쪽 가슴이 없고 젖꼭지도 없다. 아예 아무 것도 없다. 아무튼 암에 걸렸다니까 갑자기 거의 만나지도 않았던 아빠와 오빠가 찾아온다. 근데 유방암이니 겉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만나러 와도 그냥 쇼파에 앉아 있을 뿐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더라. (웃음) 또, 더이상 친구들이 스몰토크(small talk)를 안 한다고도 했다. 자기는 그 전과 똑같고 단지 암만 생긴 것 뿐인데 친구들은 “나 오늘 회사에서… 아, 아니야.” 라고 혼자서 화제를 정리하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니야, 너는 암 걸렸잖아.” 라고 한다고. (웃음)
그런 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반복해서 듣는다.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책을 읽다보면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지 않은가. 이 사람과 나와는 비슷하다, 같은. 스탠드업을 듣고 있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든다. 

Q: 언제부터 스탠드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 
이랑: 모르겠다. 스탠드업이란 장르를 알게 되면서부터 인 것 같은데… 아까 말한 래리 데이비드 같은 경우에 <사인펠드>라는 시트콤을 만들었다. 제리 사인펠드(Jerry Seinfeld)라는 스탠드업 코메디언이 본인으로 출연하는 시트콤인데 <프렌즈>가 나오기도 전이다. 그 시트콤은 시작과 끝에 항상 제인 사인펠드가 스탠드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간에는 그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 시츄에이션 코메디가 나오고… 본인과 친구들이 겪은 일들이 <프렌즈>처럼 지나간다. 루이스 씨케이도 자기 드라마에 본인이 직접 짠 스탠드업을 넣는다.
미국은 코메디의 기본이 스탠드업이어서 거기서 많은 얘기를 푼다. 그러다 나중에 유명해지면 작가가 된다던지 연출가, 각본가, 배우가 되는 식이다. 이 사람들이 하는 스탠드업과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드라마, 영화, 시트콤 같은 게 다 연결 되어 있고 뻗어 나가다보니… 스탠드업을 계속 듣는 것만으로도 그 작가들에 대한 파악이 잘 된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장르가 있는 줄 몰랐는데 미국 드라마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투나잇쇼> 같은 토크쇼에서는 쇼 중간에 음악프로처럼 밴드를 소개하기도 하고 스탠드업도 나온다. 그런 쇼의 코너답게 새로 유명해지는 사람이 짧게 몇 분 정도 자기를 보여준다. 와, 이런 장르가 있구나… 그렇게 알게 되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찾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코메디언 두명이 말하는 것 위주로 하는 만담이란 장르가 있는데 그런 것도 재미있어서 찾아보기도 하고.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에 없는 장르니까 재미있다. 




Q: 스탠드업이 다른 작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가?
이랑: 9월에 김중혁 작가님의 신작 발간 행사*에 짧게나마 스탠드업을 하려고 한다. 그 책의 주인공이 스탠드업 코메디언으로 나오는 것도 있고 내가 좋아한다고 말도 많이 했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뭐든 내 의도가 다 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멜로디나 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말의 힘만을 가지고 전달이 되면 좋겠다. 그러니까 말을 하는 장르 자체로 어떤 극을 작업하고 싶다. 거기에 랩을 해볼까. 판소리, 아니면 악기 없이 노래를 해볼까. 혹은 영상으로 만들어 볼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볼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말에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옛날부터 생각했었다. (*9월 29일 김중혁 작가의 장편소설 <나는 농담이다> 출간 기념 행사) 

Q: 노래든 스탠드업이든 나중에 아티스트로서 어떤 장소에 서고 싶은 곳이 있는가?
이랑: 그런 것은 생각 안 해봤다. 그냥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아닌, 말 자체를 작품처럼 느껴지는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걸 먼저 개발을 해야겠지. 개발도 하고 연습도 하고 그런 다음에 나중에 보여줄 수 있는거니까. 이번 김중혁 작가 행사에서도 스탠드업을 하다가 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면 뭔가 더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연습한 뒤 좀 더 길게 해보고… 그런 식이겠지. 이번에 친구 둘 앞에서 연습해봤는데 엄청 어렵더라. (웃음) 그냥 말하는 것과 코메디는 전혀 다른 건데, 연기도 들어가고 여러가지 설정도 들어가야 하니까 더 어려운 것 같다. 

Q: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랑: 모르겠다. (웃음) 그런 것은 생각 안 해봤다. 우리 세대는 내일을 생각한다고 뭐가 되는 세대가 아닌 것 같다.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 생각한다. 우리 엄마, 아빠 때는 노력하면 저금하고 집도 살 수 있는 세대인 것 같은데, 우리 때는 노력해도 그게 안된다. 그러니 일단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야 하고. (웃음) 우리보다 뒷 세대 때는 그게 더 심할 수 있겠지. 아무튼 그런 세대라서 40대가 되었을 때, 아무 것도 안되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20대 때,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한테 결혼하자고 했던 적이 있다. 남자친구는 준비가 되어야지, 뭐가 있어야 하지, 이랬고. 나는 그 말에 “야, 우리는 뭐가 없어, 기다릴 수 없어, 나중에 30대가 되도 없어, 지금 없는 것 그대로 30대가 되어도 없을 거라고 어차피 없으니까, 그냥 지금 하자” 이랬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웃음) 


11월에 일본 투어를 했던 이랑 밴드 photo by Ryo Mitamura 


Q: 앞으로 한국에서 몇 개의 공연이 잡혀 있고 일본 투어도 있다. 그 외의 다른 활동도 염두해놓고 있는가?
이랑: 일이 많다보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해야할 일이 더 많아서 못하고 있는게 많다. <집단과 지성>도 몇 개를 편집해서 시나리오집을 쓰고 있는데 편집실에도 가야한다. 영화사에 가서 미팅도 해야되는데 그러려면 시나리오라든가, 하다 못해 트리트먼트라도 써야된다. 그것 말고도 출판사와 네 권 정도 책이 계약되어 있어서 작업해야 한다. 여행 다니면서 쓰는 글을 모은 책도 내야해서 여행도 간간이 가야하고… 그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근데 이번에 일본반이 나와서 홍보해야 하고 영상통화로 인터뷰를 하고, 따로 또 글을 쓰거나 사진 찍거나 하면서 거기에 시간을 쏟고 있다. 일본 투어 준비로도 합주를 하거나 셋리스트 짜다보면 또 뭐 했다고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그리고 연락해야 할 일도 되게 많다. 음반의 경우에 일본하고 한국 레이블이 따로 연락이 온다. 공연하자는 것도 박다함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이 각자 연락을 해온다. 영화 쪽, 출판사, 편집실, ‘신의 놀이’ 뮤비 감독이나 무용수들, 또 다른 배우들에게도 오고 정신이 없다. 작업실에도 와야 하고. (웃음) 자다가 일어나서 핸드폰 알림 온 것들을 쭉 내려 읽고… 답변하면서 커피 마시고 담배 피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이 흐른다.
뭔가 내일은 뭐할까, 가 아니라 내일은 무조건 이걸 해야 돼, 다. 나는 회사를 안 다닐 뿐이지 일의 양은 되게 많다. 한 3주 정도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만 하다가 딱 하루만 쉴 때도 있는데 그런 적이 되게 많다. 지금 해야되는 것만으로도 2년은 그냥 흘러갈 것으로 보고 있다. 

Q: 그렇게 해야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다 잘 하고 싶은건가? 일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이랑: 나는 더 많이 하고 싶다. 아예 안 자고도 건강할 수 있으면 아예 안 자고 더 많이 하고 싶다. 일중독이라서. (웃음) 일하는게 재미있다. 뭐 다른 건 재미있는 게 없다. 할 수만 있으면 술 마시면서 일하고 싶다. 술 먹으면서 글 쓰고 춤추고. 기왕 놀거면 술 먹으면서 놀고 싶다.
얼마 전에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했는데 재미있었다. 9점을 네 발 쐈다. 10점짜리 한 발도 쏘고. 처음 해봤는데 되게 재미있었다. 그런 식으로 가끔 짧은 시간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사격을 한다던가, 누구랑 섹스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잠깐 기분 전환을 팍!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다 일을 한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게 좋다. 일을 좋아하는 타입 같다. 일을 어떻게든 다듬어서 끝내고 그것을 사람들한테 빨리 보여주려고 하는 시스템이 스스로 잡혀 있는 것 같다.
보통 작업을 많이 하면서도 안 보여주는 사람이 진짜 많지 않나. 나는 이상한 거라도 일단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연예인처럼 꾸민 나를 보여주고 싶어한다기 보다… 작업을 보여주고 싶은데, 거기에 나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고양이를 이용한다던지. (웃음)
근데 아직도 자기 작업을 공개 안 하려는 주변 친구들이 많다. 걔네들한테 아무리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주길래, 처음에는 답답해 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그냥 나와는 성향이 다른 거 같더라. (웃음) 지금은 그냥 “넌 예쁘니까 할 수 있어. 존재 자체만으로도 잘 하고 있어. 돈 없어도 돼 내가 밥 사줄게. 대신 말 안 하고 죽지만 마라. 말은 하고 죽어라. 자살 하기 전에 꼭 얘기해라” 하고 말해준다. (웃음) 그러는 게 마음이 편해진다.
본인들도 어떻게든 잘 해보고 타파할 생각들을 하고 있을텐데. 내가 거기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간섭 해봤자… 괜히 친구들 자존감에 상처주고 도움이 안되더라. 지금도 자기들이 가야할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들일텐데. 물론 나도 남이 얘기하면 안 듣는다. 까먹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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